-페미니즘, 퀴어 ‘열풍’? “사회의 호명 받아들이겠지만 유행으로 끝나서는 안 돼”
[ 뉴스페이퍼 = 조은별 기자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를 말할 때, 페미니즘과 퀴어 담론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일 것이다. 이른바 ‘젠더 이슈’로 불리는 여성, 성 소수자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문제 제기는 현재까지도 연일 화두에 오르며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영화화 되기도 한 조남주 작가의 장편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출간 이래 벌써 삼 년째 베스트셀러 한 켠을 차지하고 있으며, 비슷한 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 국가 및 동남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역시 주목받는 작품으로 떠올랐다.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 현장에서 역시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젠더 이슈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지난 12일, DDP 살림터에서 진행된 ‘작가들의 수다’ 프로그램에서는 프랑스와 한국의 젠더 이슈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행사를 위해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랑스 누아빌과 한국의 소설가 박상영, 시인 정한아, 김현이 한 자리에 모였으며 참석이 예정되어 있던 쿠웨이트 출신 시인 모나 카림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아쉽게도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측에서 발행한 에세이집에 ‘여성 작가의 소설을 (다르게) 바라보는 12가지 방법’을 실은 플로랑스 누아빌 작가는 그의 산문에서 “내 책이 한 권 한 권 출간될 때마다 사람들은 ‘자전 소설인가요?’라는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라며 “이 말은 ‘이 책도 어떤 여자에 대한 흔해 빠진, 조지 엘리엇의 표현대로 어떤 여류 작가가 쓴 유치한 심리소설 같은 건가요?”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라는 말로 여성 작가와 작품에 가해지는 왜곡된 시선을 비판했다. 누아빌 작가는 이에 대해 “그 누구도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그린 이유에 대해 묻지 않는다.”라고 지적하며, “작품의 핵심은 인간 내면에서 공명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공유하는 데 있지, 작가의 성별이나 그 자신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재희‘,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등을 발표한 박상영 작가는 문단에서 흔히 ’퀴어 작가‘로 호명되기도 한다. 그는 퀴어 작가라는 호명이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서 소수자 담론을 피곤한 것으로 여겨 유행으로써 소모되기를 바라는 혐의가 느껴질 때 불편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특별 취급 이면에는 빠른 소비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라고 말한 그는 누군가를 퀴어나 여성으로 대상화하는 시기에서 벗어나 오롯이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존중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정한아 시인은 남초 사회였던 대학에서 겪은 경험담을 고백하며 젠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평소 잘 꾸미지 않다가 분홍 셔츠를 입고 등교한 어느 날, ’너 루즈도 한 번 발라봐.‘라는 농담을 듣고 덜컥 두려움을 느꼈다는 그는 “남성인 누군가에게 내가 여성으로 호명된다는 것이 공포가 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럴 때면 성별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보게 된다.”라며 젠더와 개인에 대한 논의를 개진해나갔다.
이날 행사는 좌담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작가들은 ‘수다’라는 프로그램명에 걸맞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며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래 내용은 작가들이 나눈 수다 내용과 질의응답 일부를 재구성한 것이다.

김현(이하 김): 프랑스와 한국의 작가들이 모인 자리다. 자신의 나라에서 젠더 이슈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각자의 진단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누아빌(이하 누): 현재 유럽에서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젠더 이슈가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문학에서도 시몬 드 보부아르나 버지니아 울프의 단초를 기틀로 계속해서 역사가 이어지는 상태다. 유럽 사회에 페미니즘이 등장한 지 꽤 오래 흘렀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진보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월경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든지, 일처다부제 사회를 그린 작품이 등장하는 등 여성 발화가 확대되는 추세다. 앞으로 더 다양한 여성 문학이 발표되어야 한다고 본다.
박상영(이하 박): 2016년도에 데뷔했는데, ‘문단 내 성폭력’ 이슈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그 복판에서 나는 신인으로서 문단의 부조리를 직접 목격ㆍ경험했고, 현행 제도를 떠받든 체계가 다분히 남성중심적이라는 걸 느꼈다.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이후 페미니즘과 소수자 담론이 주목받았던 건 다들 기억하실 거다. 내 작품 역시 ‘퀴어 문학’으로 호명되며 일명 ‘시스젠더-헤테로섹슈얼-남성’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가부장 문학 세계 토대를 휘저어놓는 운동처럼 읽히게 됐다. 나 또한 이런 영향을 긍정하는 편이고. 주 독자층이 여성인 데 반해 남성 서사가 대부분이었던 문학 시장만 보아도 알 수 있듯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불평등한 측면이 많다. 그래도 지금은 본격적으로 여성 서사가 메인스트림화 되는 것 같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정한아(이하 정): 페미니즘이라든지 퀴어, 소수자 담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직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나는 흔히 사회가 남성성, 여성성이라고 정의하는 젠더 스테레오가 실제로 그 성별을 대변한다고 보지 않는 입장이다. 사람에게는 모두 양성적 지점이 있는 게 아닐까? 일단 무엇이 남성성이고 여성성인가에 대한 메타적 규정부터 필요하겠지만, 일단 나는 우리가 어떤 성별을 가진 사람이기 전에 그냥 어떤 개인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김: 살면서 젠더 이슈와 직면하고, 이를 체화하는 과정을 한 번쯤 겪었을 것 같다. 관련된 경험들이 있다면 듣고 싶다.
정: ‘소녀로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체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그냥 사람이던 나를 여성으로 훈련시킨다고 느끼는 순간들. 남초 사회인 철학과를 졸업했는데, 그곳에서 나는 늘 맨 얼굴에 운동화를 신고 무채색 옷을 입은, 그냥 ‘남동생’에 준하는 존재였다. 거기에는 “나는 당신에게 안전한 사람이고, 당신으로부터 안전한 사람이고 싶어요.”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다가 ‘프랑스 문학과 페미니즘’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며 성인이 된 후로는 처음 여초 사회에 진입하게 됐는데, 그때 사회적 ‘여성성’을 띤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익숙함, 편안함이 아니고 낯섦과 공포였다. 차후 대학원을 여초학과로 진학하며 이런 여성 멀미 현상은 좀 나아졌는데, 일련의 경험을 통해 도대체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남녀를 구분 짓는지, 그게 단지 성기의 차이인지 아니면 관습이나 태도의 차이인지 같은 것들. 아직도 나는 성별을 구획 짓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물론 정치적으로는 성별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층위에서 보면 내 자아의 목소리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시스젠더인지 트랜스젠더인지 구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 소설 속에 인간이 서로에게 가하는 심리적 폭력에 관해 그려낸 적 있다. 폭력과 사랑은 대체로 양립하는 지점이 있는데, 이것이 곧 남성성과 여성성의 공존과도 같다. 흔히 여성성은 부드러움, 공감으로 대변되고 남성성은 폭력, 경쟁으로 정의된다. 나는 이렇게 명확한 구획으로 남녀를 나누고 싶지 않고 오히려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다. 페미니즘 사회에서는 보통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나. 그런데 이제까지 있었던 여성 정치인들이 정말로 더 ‘여성적인 정부’를 만들었느냐고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거다. 그들은 정치 행보를 펼치는 과정에서 사회적 남성성을 체화하고 동화되었다. 결국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건 그냥 신화이자 환상에 불과하다.
박: 이건 정치가 주로 남성 권력에 의해 전개되어 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곳에서는 여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배제하고, 하위 문화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 더 많은 압박이 가해지는 것이 아닐까? 권력지향적 성격 자체를 남성성의 일부로 호명하고 있다는 것, 이게 포인트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결국 신화일 뿐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간은 그냥 인간, 개인이어야 한다.
김: 젠더 이분법을 타파하고 성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남중, 남고, 군대와 같은 남초 사회에서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폭력에 노출되기도 했다. 박상영 작가도 이런 고충이 있었을 것 같은데 학창시절 혹은 습장기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
박: 교육자들조차 젠더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매몰되는 경향이 있어 당황스러운 적이 많았다. 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루고 있을 뿐인데 그 대상이 퀴어라는 이유만으로 뭉뚱그려 ‘퀴어 문학’으로 구획화한다든지. 문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계속 있었다. 예를 들어 데뷔작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에는 문제적 남성이 등장한다. 대학, 직장, 성별, 사회의 온갖 메이저 요소는 다 누리고 있으면서 사상적으로 ‘미소지니’의 양태를 띠고 또 이를 깊이 체화한 인물이다. 솔직히 말해서 비웃으라고 넣은 캐릭터인데, 독자는 나와 화자를 잘 구분하지 않는 것 같더라. 개인적으로 작품보다 더 드러나있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작가로서 소거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소수 정체성 화자를 드러내면 일단 에세이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작가 스스로가 ‘나는 퀴어 문학 작가다’라고 선언한다면 그 호명은 정치적이고 사회 운동적인 거겠지만, 타자의 호명은 글쎄. 거기에는 대상을 하나의 ‘유행거리’로 치부하려는 혐의가 있다고 본다. 요컨대 빠르게 이름 짓고 유행 따라 한 철 잘 흘려보내면 거기서 소비는 끝이라는 거다.
정: 박상영 작가의 태도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 평론가와 독자는 어쩔 수 없이 호명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아 보인다. 물론 작가로서 너의 정체성은 이거야, 하고 재단 당하는 건 억울할 일이지만 어떤 정의나 규명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건가?
박: 물론 호명 행위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독자나 평론가 편의 측면에서도, 또 경향이 있어야 판촉이 원활한 시장 논리에 의거해서도 호명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이드라인을 원하는 측면도 있고. 하지만 소위 말하는 학자, 그러니까 지식인층에 대한 불만이 좀 크다. 자신이 지식인이고 권력자인 걸 알면 새로운 아젠다가 등장했을 때 공부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유성애자 남성인 나도 설득되는 퀴어 소설이었다.” 같은 평론이 작품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회의가 드는 거다.
김: 나도 “글로리홀”을 발표하고 퀴어 시라든지 시인이라든지, 전위적 작품이라든지 그런 호명이 많았다. 퀴어가 등장하더라도 퀴어 담론이 중심이 아닐 수 있고, 얼마든지 다른 담론을 도출해낼 수도 있는 건데 퀴어에만 집중해버리는 태도는 아무래도 긍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시대가 변하면서 확장적 비평 시도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퀴어 문학이 보편화되지 않은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질 텐데, 박상영 작가는 독자에게 접근하기 위한 새로운 어휘를 어떻게 만들어내나?
박: 소설 속에 주로 일인칭 화자를 내세우는 편이고,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방식에 고민이 많다. 일단 좀 현실적인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는데 그것 때문에 ‘인스타 문학’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도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실제 통용되는 구어 같은 발화가 내 성향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맞는 양식이라고 본다. 지금은 이 일인칭 화법에 어떻게 여러 변주를 넣을 것인지 대한 고민이 많이 늘고 있는 시점이다.
김: 이제 우리끼리는 이야기를 많이 했고, 관객분들께도 마이크를 돌려야 할 것 같다.
관객1: 강의를 듣다 보니 우리 사회가 너무 젠더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젠더에만 집중하고, 젠더에 입각해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까? 여기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박상영 작가의 작품이 딱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의도한 부분인가?
박: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쓴 게 맞다. 독자들이 퀴어를 낯설고 이질적인, 대상화된 존재로 느끼지 않고 그냥 어느 한 개인으로 느끼길 바랐다. 반대로 내 작품에 퀴어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소설을 퀴어 문학이라고 호명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고 해도 ‘퀴어 선언’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냥 한 자연인이자 개인으로, 있음직한 사람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 정치적으로 읽힐 것을 몰랐다고는 할 수 없다. 그건 아직까지 한국의 지형상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래도 다양성이 확대되고 나면 점차 나아질 거라고 기대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결국 사람 사는 건 어디에 사는 누구든 다 똑같다는 얘기다.
관객2: 우리 사회에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해 있다. 그래서 젠더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남녀라는 틀에 갇히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좀처럼 쉽지가 않더라. 작가분들은 생활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젠더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나?
정: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작년에 처음 일본에 다녀왔다. 한 대학 학생들로부터 초대를 받았는데, 내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데 도움을 구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일본어에는 남녀가 쓰는 어휘가 구별되어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이 부분은 여성 화자의 언어로 번역해야 될까요?” 같은 걸 묻는데, 화자의 성별을 구체적으로 지정하지 않고 쓰는 편이라 대답하기 참 난감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 고착에 큰 기여를 한다고 보는데, 한국어에 성별 구분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를 느꼈다. 다시 질문으로 좀 돌아가 대답을 하자면, 나는 현실을 기반으로 창작을 할 때는 일부러 성별을 바꿔서 써보기도 한다.
김: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이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지정 성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존재가 여성인 동시에 남성인 외계 종족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모두 ‘he’라고 표기했다가 나중에 페미니즘 논쟁에 휘말렸다. 그는 “당시에는 그게 내 최선의 전위라고 생각했는데, 좀 모자랐다.”라는 식으로 쿨하게 인정하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직장에 다니면서 군대식 ‘다’나‘까’ 말투를 사용하는 것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이걸 없애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다.
박: 나는 누군가 가진 집단적 특질보다는 그냥 그 개별적 인간 하나에 주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남초 사회에서는 남성성 수행의 압박이 심하고, 그걸 수행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라 젠더 이분법에서 벗어나기 굉장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어떻게 젠더로부터 벗어날 것인가는 오랜 숙제인 것 같다. 여전히 매일 고민하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