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는 끝내 삶의 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꿈의 언어” 고재종 시인의 신작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와 적막한 삶에 관해
[인터뷰] “시는 끝내 삶의 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꿈의 언어” 고재종 시인의 신작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와 적막한 삶에 관해
  • 김보관 기자
  • 승인 2019.11.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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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고향 집에 머무는 고재종 시인의 신작 시집, ‘문학들’에서 출간돼
웃고있는 고재종 시인의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웃고있는 고재종 시인의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농촌의 내밀한 모습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려온 중견 시인 고재종의 신작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가 광주전남 대표 출판사 ‘문학들’과 함께 출간됐다. 고재종 시인은 그간 농촌시, 실존주의시, 생태시 등 다양한 삶의 면면을 다루어왔다.

“빈 고향집을 수리하여 우거 삼은 지 꽤 오래”라는 고재종 시인의 새 시집 출간 소식을 맞아 고향인 담양에 머물고 있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이번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는 근래 시인을 둘러싼 고요와 적막 속에서 그가 캐낸 아름다운 언어들로 가득했다.

고재종 시인의 시 ‘고요를 시청하다’ 중에서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1. 담양의 고향 빈집을 수리하여 머무시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고향 동네에서의 창작 활동을 결정하신 계기나 이유는 어떤 것인가요?
  
저는 원래 작품 생활 시작 때부터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 농민 정서를 대변하는 시를 썼습니다. 나중에 건강과 생활난 때문에 광주에 가서 15년가량을 살면서 생태적 사유와 실존적 의식의 시를 썼는데, 역시 저에게는 고정적인 일자리도 없는 도시 생활이 힘들었지요. 그래서 15년 전에 저 혼자만 책 보따리를 싸 들고, 부모는 작고하시고 형제들은 모두 떠난 빈 고향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제 모든 시의 정서는 그 뿌리를 농촌에 두고 있기에 이곳에서 텃밭에 채소도 좀 가꾸며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그런대로 즐겁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2. 시작을 이어나가는 공간의 고요와 적막이 이번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의 근간이 되었을 듯합니다. 붐비는 서울과는 달리 침묵과 자연으로 가득한 지역이 갖는 힘이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적으로 보면 젊은이들 모두 떠나고 유모차 미는 노인들만 남은 농촌사회의 고요와 적막은 심각한 문제지요. 그 노인들마저 하나둘 떠난 자리에 도회지 사람들이 별장이나 전원주택을 짓고 들어서지만, 그들과 원주민들은 거의 교류가 없습니다. 한데 존재나 실존론적으로 보면 그 고요, 적막, 침묵, 고독, 외로움 등은 소란과 능변으로 밤새는 줄 모르는 현대 도시 생활의 성찰 기능으로 그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나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고독과 침묵 속에서 자기의 내면을 발견하여 창조와 상상력의 구름을 피우고, 고요와 적막 속에서는 깊은 성찰과 함께 인생의 궁극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고재종 시인의 신작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 [사진 = 김보관 기자]

3. 이번 시집 “고요를 시청하다”를 통해 문학들 시인선의 첫 번째 순서를 장식하셨습니다. 광주전남 지역을 대표하는 출판사 ‘문학들’과 함께 시집을 엮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그간 저는 총 9권의 시집과 1권의 육필 시선집을 냈는데, 이번 시집만 빼고 모두 서울의 유수한 출판사들에서 책을 냈습니다. 한데 저는, 지금 광주전남 지역에서 나름대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종합문예지 “문학들”의 창간에 참여하고 주간으로서 역할을 맡아 잡지 정착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래서 ‘문학들’에서 시집을 내게 되어 감회가 새로운데, 사실 ‘문학들’엔 기존의 문학들 시선 시리즈가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시집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것은 오늘의 현실에 맞는 시선의 감각성 확보와 시선의 전국화를 모색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문학들”이 그간 세워온 그 위상과 품격에 걸맞은 작품집들을 견인해내자는 뜻이기도 한데, 그 시선 시리즈 1번을 장식하게 돼서 저에게는 영광입니다.         

4. ‘시인의 말’을 통해 이번 시집을 출간한 ‘문학들’ 출판사와 깊은 인연에 관해 밝혀주셨습니다. “문학들” 창간에 참여하고 편집주간, 시선 기획인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해오셨는데요. 출판사 ‘문학들’과의 첫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고 이어지게 되셨나요?
  
“문학들” 이전에 저는 “시와 사람”이라는 잡지의 창간을 돕고 주간으로서 잡지정착에 노력을 기울였었습니다. 근데 그 잡지와 시절 인연이 다하여 그만두고 놀던 차, 문인들의 술좌석에서 광주전남의 문학지 필요성에 대해 여럿이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주전남의 정신을 담아낼 지역문학인들의 발표공간에 대한 간절한 욕구를 현실화하려는 꿈으로 다시 불타오를 때, 마침 ‘금호문화’ 편집장을 하다가 출판사를 차린 송광룡 사장의 편집능력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잡지 창간을 권유했던 것이 그 첫 만남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주간을 맡아 한 5년간 잡지 정착에 무척 공을 들였는데, 사실 잡지 제호 ‘문학들’도 제가 작명한 것입니다.

고재종 시인의 시 ‘구암산방’ 중에서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고재종 시인의 시 ‘구암산방’ 중에서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5. 총 82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을 발간하시면서 시의 내용이나 구성 등에 있어서 특히 신경을 쓰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저는 애초에 대승이 못 되고 소승인 탓인지, 시도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쓰려고 하고, 또 그렇게 해왔습니다. 농사지을 때는 농민시, 건강이 안 좋을 때는 생태시, 도회 생활의 스트레스 때는 실존의식의 시를 썼지요. 한데 요새는 고향의 고요와 적막, 침묵과 고독 속에 처하니 자연스레 생의 적막과 고독에 천착하게 됐지요. 시 속에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그리고 공(空) 사상 등 불교적 사유도 끌어들이고 특히 리듬에 신경을 많이 썼지요. 시인은 우주적 리듬을 호흡하고 존재의 궁극에 도달하는 특별한 존재이고 시의 언어는 영성을 지닌 마법의 언어라고 누군가는 말합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삶과 문화 전체가 포르노그래피일지라도 시는 끝내 삶의 진실과 우주 비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꿈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고재종 시인의 시 ‘시인이라는 직업’ 중에서 [사진 = 김보관 기자]

6. 시집 말미의 열일곱 시인들에 대한 시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들을 창작하시게 된 계기나 의도는 무엇인가요?

불교에 연기설화라는 게 있지요.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생기고 저것은 또 그다음 것의 말미암음이 되어 삶이 결국 모든 존재와 관계 지어지게 되는 인드라망의 세계가 곧 연기의 세계이지요. 김수영의 시구에 나오는 것처럼 바다의 모래알만도 못한 제가 이렇게나마 오늘까지 존재하게 된 것은 시에 나오는 열일곱 분의 시인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요즘 더 자주 합니다. 그중 열일곱 분 시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인물시를 쓰게 된 것입니다.

7. 그중 ‘시인이라는 직업’이라는 시를 통해 임영조 선생님과의 일화를 전해주셨습니다. 어느덧 35년째 시인으로 살아오고 계시는 고재종 선생님께 ‘시인’이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역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삶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으신가요?
  
시인은 자기의 고독과 연애를 파먹고 사는 존재이자 시간을 창조적으로 변용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오차오라는 청나라 문인은 ‘노변시화’에서 “산문 쓰기는 불을 때 밥을 짓는 것에 비유되고, 시 쓰기는 발효시켜 술을 빚는 것에 비유된다.”라고 했습니다. 고독할지라도 홀로 고고하고, 모든 존재에 대해 끝없는 연애를 걸고, 발효된 시간의 술에 취해 인생을 논할 수 있을 때, 이런 것을 가로막는 모든 억압의 힘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역이나 변방은 그러기에 시 쓰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고재종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8. 끝으로 첨언하고 싶으신 부분이나, 이번 시집에 관해 더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편히 이야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최근 우수도서를 선정하는 일에 몇 번 참여해서 한꺼번에 많은 시집을 읽곤 했는데, 요새 우리 시가 잃어버린 것은 리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착종과 혼종어로 도배된 지리멸렬한 자기변설과, 새로움과 개성이란 말로 포장된 문화 트렌드에 맹종하는 사적(私的) 표현의 범람이었지요. 그렇게 무엇이든 한바탕 태풍처럼 쓸고 가면 망가지는 것은 삶과 대지의 찬란하고도 웅혼한 리듬입니다. 밤이면 찾아드는 고요와 침묵의 또 다른 세계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태풍은 불어 닥치겠지요. 하지만 시인은 싫건 좋건 자기의 삶을 꽉 끌어안고 그것을 어떻게 우주율 속에 편입시킬 것인가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나비가 제 날개에 묻은 지분으로 장대 같은 빗속에도 젖지 않고 날아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제 시집의 시가 거기에 한 편이라도 부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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