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1) / 신과 시인 - 박찬일의 ‘녀석아, 녀석아 머릴 내밀어라’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1) / 신과 시인 - 박찬일의 ‘녀석아, 녀석아 머릴 내밀어라’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1.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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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1) / 신과 시인 - 박찬일의 ‘녀석아, 녀석아 머릴 내밀어라’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1) / 신과 시인 - 박찬일의 ‘녀석아, 녀석아 머릴 내밀어라’

 

  녀석아, 녀석아 머릴 내밀어라

  박찬일


  햇볕과 안개, 그리고 그 안을 운행하는 하얀 손이
  붙잡아 올린 기적,
  매번 그 뜻에 이끌리어 바닷가에 온다
  매번 그 뜻을 존중해서 수평선을 지켜본다

  녀석아, 녀석아 머릴 내밀어라
  거북과 있고 싶다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 녀석아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너를 잡아먹을 테다
  하얀 손을 잡아먹을 테다

  아니요, 아니요
  하얀 손이시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당신 원대로 하옵소서

  녀석아, 녀석아 머리를 내밀어줘라  

  ―『시인시각』 (2006. 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1) / 신과 시인 - 박찬일의 ‘녀석아, 녀석아 머릴 내밀어라’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는 현전하는 최초의 집단 무요(舞謠)인 「구지가」를 한역한 것이다.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오긴 했지만 박찬일의 이 시는 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신에 반항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하얀 손은 신의 손일 테고, “거북과 있고 싶다고 바다 속으로 들어간 녀석”은 자살자일 것이다. (한국의 연간 자살자 통계를 보고 경악해 마지않았던 적이 있다.) ‘자살’은 창조주인 신에 대한 가장 큰 반항이다. 반항아는 신에게 외친다. 모습을 드러내 보이라고. 

  제3연은 이런 뜻으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숨어 있는 신이여. 당신이 끝끝내 숨어 있겠다면 내 주검을 보여주겠소. 내 바다에 뛰어들어 죽음으로써 당신을 잡아먹겠소.’ 신에 대한 반항 정도가 아니다. 처절한 반역이요 무서운 독신(瀆神)이다. 그런데 화자는 엑소시스터처럼 죽은 자의 몸에 들어가서 신을 성토하던 자세를 바꿔 제4연에 가서는 신에게 순명을 한다. 그렇다면 제5연은 무슨 뜻일까. 시인이 사자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사자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피조물인 인간이 아무리 날고 뛰어본들 신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은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제4연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가진 뒤에 올리브 산으로 올라가 기름 짜는 터인 겟세마네에 이르러 제자들을 뒤로 물리고 신께 올리는 기도 중에 하는 말이다. 사람의 의지와 신의 뜻이 어찌 늘 같을 수 있겠는가. 무수한 부인과 반항 가운데 신의 뜻을 이해해 가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일 터, 이 시의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연으로 보면 될 것이다. 하얀 손이 붙잡아 올린 기적을 우리는 꿈꾸지만, 숨은 신은 대체로 말이 없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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