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6) / 간장게장 집에서 - 박수빈의 ‘여보게 웃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6) / 간장게장 집에서 - 박수빈의 ‘여보게 웃게’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1.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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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6) / 간장게장 집에서 - 박수빈의 ‘여보게 웃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6) / 간장게장 집에서 - 박수빈의 ‘여보게 웃게’

 

  여보게 웃게 

  박수빈


  왜 옆으로가 앞으로인가
  여보게 웃게 

  어디나 갈 수 있고 어디도 갈 수 없어 
  죽어서도 우리는 표류자 
  비린내를 전파하지 

  밥상이어서 거룩하다 
  누군가 살점을 먼저 집어간다 
  집게발은 가위처럼 위험하고 
  잡으려면 미끄러지는 감정 

  마른 혀가 구차할수록 거품을 문다 
  타인의 살은 왜 이리 맛있나
  김 씨를 씹고 박 부장을 씹고 나도 씹히며 
  너도 나도 오도오독(誤讀誤讀) 

  발설하지 못하는 공복이 빠드득 
  여보게 웃게 
  찰진 결핍이 달빛을 머금고 
  조금과 사리를 오가는 속내도 있다
  은밀한 부위에 닿자 소름이 돋는다

  애간장은 그믐의 점괘 
  뼛속 깊이 발라지는 사랑 
  엎드려 울기에 단단한 등을 지녔다 

  씹다 뱉어낸 바닥에 형체 잃는 사지들
  치부를 본다 

  —『비록 구름의 시간』 (천년의시작,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26) / 간장게장 집에서 - 박수빈의 ‘여보게 웃게’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여보게 웃게’는 간장게장을 하는 식당의 상호다. 전국에 여러 집 있는데 이 시를 쓴 시인은 그 식당에 가보았나 보다. 이 시의 화자는 게인데 게가 아닌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재미있다. 

  직장생활을 하면 종종 상사를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밥 먹으러 가서 ‘씹는다’. 오독오독, 빠드득빠드득. 부당하게 갑질하는 상사는 되게 밉다. 상사는 부하직원이 사랑스럽기만 한가. 일은 지지리도 못하면서 눈치만 10단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토를 자꾸 다는 부하는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사람 사는 게 이렇게 서로 씹고 씹히는 관계라는 발상으로 쓴 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것이 늘 우호적일 수는 없다. 대통령도 씹히고 시어머니도 씹히고 며느리도 씹힌다. “씹다 뱉어낸 바닥에 형체 잃는 사지들”은 간장게장집의 게이면서 갑질하는 아무개다. “애간장은 그믐의 점괘/ 뼛속 깊이 발라지는 사랑/ 엎드려 울기에 단단한 등을 지녔”으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급적이면 씹고 씹히는 관계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남을 욕하면 대개는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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