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유현아의 번지는 풍경] 이야기와 이야기들의 시작 (1)
[문화다][유현아의 번지는 풍경] 이야기와 이야기들의 시작 (1)
  • 유현아시인
  • 승인 2019.11.27 14:18
  • 댓글 0
  • 조회수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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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와 엄마는 이곳에서 겨울을 나신다. 그리고 내가 사는 상계동.

   아빠는 열여섯에 엄마는 열다섯에 서울로 도망치듯 오셨다. 그 시절 십 대의 소녀소년들은 서울을 그렇게나 오고 싶었다고. 소년과 소녀였던 아빠와 엄마는 서울에서 45년을 살고 아빠의 고향 전라도 김제로 내려가셨다. 서울에 더 살기 싫어서도 아니고 고향에 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육십이 된 아빠는 더이상 서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아셨다. 정리할 것도 없었지만 정리한 돈으로 김제의 땅 한 귀퉁이를 사 이사를 했다. 그러나 서울을 온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다. 서울 끝자락이라도 잡고 싶었던 것일까. 공장을 하다 망해 들어온 판잣집을 잊지 못해서였을까. 고개만 넘으면 경기도 남양주 청학리인 상계동 끝에 전세를 얻었다. 집주인은 대구사람이었다. 집주인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재개발 될 줄 알고 덜컥 사버린 이 집이 있는 동네는 아직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았다.

   상계동은 그런 곳이었다. 지긋지긋하지만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그런 곳.

   상계동으로 들어온 때는 아빠 나이 서른다섯, 엄마 나이 서른넷, 내 나이 일곱 살이었다.

최연택.  '덕릉로 141길'  종이에 수채  24.5x36cm  2019
최연택. '덕릉로 141길' 종이에 수채 24.5x36cm 2019

 

   엄마 아빠가 겨울을 나는 이곳의 다른 이름은 양지마을이다. 하늘아래 마을이라 그런가, 햇빛과 달빛과 별빛이 유난히 밝은 이곳.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단정한 집들이 전단지처럼 붙어있다. ‘붙어있는’다는 것은 후, 불면 날아갈 것 같다는 말일 수도 있다. 겨우 지탱하고 있는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곳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지키고 있는 움직임들이 있다.

여전히 연탄으로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집도 있고, 프로판 가스통이 골목골목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낮이나 밤이나 드나드는 사람들이 뜸하다. 집을 올라가다 뒤돌아서 내려다보면 당고개역이 보인다. 그리고 아파트들이 듬성듬성 비현실적으로 거대하게 보인다. 누군가는 저 아파트에서 살고 싶기도 하겠지. 올라오는 이 길이 정말 지긋지긋하겠지. 밤이면 고양이 세상이고 깜박거리는 가로등 세상인 이곳이. 

나는 당고개역으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상계동을 떠나고 싶어 떠나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들어온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계동에서 살고 있다. 우리 동네 골목을 사랑하고 우리 동네 흐느낌을 사랑한다. 더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고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가끔 이곳이 서울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동네의 이야기들의 이야기를.

유현아
시인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6년 전태일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2013)이 있음.
최연택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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