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0) / 빗속을 울며 걷다 - 김선화의 ‘정경’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0) / 빗속을 울며 걷다 - 김선화의 ‘정경’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1.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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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0) / 빗속을 울며 걷다 - 김선화의 ‘정경’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0) / 빗속을 울며 걷다 - 김선화의 ‘정경’

 

  정경

  김선화


  햇살도 술렁대는 교도소 안마당에
  가족과 함께하는 운동회가 열렸다
  손꼽아 기다리던 날 발그레한 얼굴들 

  청백군 편을 나눠 달리기, 줄다리기
  어릴 적 운동회로 돌아가 맘껏 뛰며
  모처럼 푸른 함성이 울타리를 넘는다

  이제는 부모님을 등에 업고 달릴 차례
  온 힘을 쏟아 부을 오늘의 하이라이트
  아무도
  달리지 않고 걷는다
  주르륵, 봄비 내린다

  —『유심시조아카데미』 제2집(201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0) / 빗속을 울며 걷다 - 김선화의 ‘정경’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교도소에서 가족 초청 운동회가 열렸다. 이 시조의 제 1, 2연은 별다른 내용이 없다. “푸른 함성” 같은 공감각적인 표현도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총 5행으로 처리한 제 3연에 가서 김선화 시인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수용자(요즈음에는 죄수 대신에 이 용어를 쓴다)들이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업기는 했는데 다들 달리지 않는다. 아니, 달릴 수가 없다. 거의 전부 처음으로, 연로한 어머니나 아버지를 업어보고는 그 가벼워진 무게를 실감해 우느라 달릴 수가 없는 것이다. 업은 자식도 울고 업힌 부모도 운다. 그 정경을 보고 있는 다른 가족도 운다. 수의를 입고 죗값을 치르고 있는 자식들, 바깥에 있을 때도 어머니나 아버지를 업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교도소 안마당에서의 운동회 때 자식 걱정에 여윈 노인을 업고는 징징 울며 걷는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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