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문화 다 신작 미니픽션] 주애령 소설가의 「다문화」-주애령(소설가)
[웹진 문화 다 신작 미니픽션] 주애령 소설가의 「다문화」-주애령(소설가)
  • 주애령(소설가)
  • 승인 2019.11.2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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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작업 = 한송희 에디터
이미지 작업 = 한송희 에디터

 

너희 잠깐 술 먹지 말고 형 말 들어봐. 잠깐이면 된다니까. 야야, 거기 잔 내려놔. 내려놔 봐 임마. 중요한 얘기야. 너희도 듣고 나면 피가 되고 근육이 되는 얘기라고. 진짜라니까. 아니면 내가 이 자리 쏜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베트남 여자 두들겨 패는 남자 동영상 다들 봤지. 안 봤어? 안 봤어도 무슨 일인지는 알 거 아냐. 여자가 바람피워서 팬 거 아니냐고? 야, 뉴스 좀 읽어라, 읽어. 주먹만 한 지 새끼 앞에서 엄마 때려서 뼈까지 부러뜨린 일도 몰라? 한국말 다 아는데 못 알아듣는 척해서 팬 거 아니냐고? 얘는 뉴스를 읽긴 읽었는데 잘못 읽었네. 뉴스 읽을 거면 제대로 읽어야지. 집에 가서 잘 좀 찾아봐.

아오, 나는 그 뉴스 읽으면서 그 뭐냐, 인터넷 줄임말 뭐더라 그거, 피꺼솟! 피가 거꾸로 솟더라. 그런 새낀 감옥 밥도 아깝고 그냥 죽여버려야 한다. 뭐하러 살려 두냐? 다 우리 피 같고 술 같은 세금이야. 너희들 동남아면 무조건 피하고 보는데 그거 진짜 바보짓이다. 걔네 얼굴은 방글방글 웃어도 다 먹고살려고 독하게 맘먹고 한국 넘어온 거야. 비웃는 거 같아서 기분 나쁘다고? 그럼 남의 나라에서 웃어야지 인상 쓰고 있다가 그거 뭐지, 빈 라덴 걔 그거. 아이에스인가 이비에슨가로 몰려서 테러한다고 잡혀가면 어쩔 건데. 무조건 아이고 나으리, 하면서 웃어야지.

아무튼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니까 그만 끼어들어. 있잖아, 내가 왜 동남아 애들을 때리거나 욕하지 말아야 하는지 얘길 해 줄게. 나는 공부 못 해서 대학 못 갔지만 우리 큰 형은 공부 잘해서 인 서울 경영대 갔잖냐. 자랑이냐고? 형 이야기 아냐. 우리 형 같은 과 후배 얘기야.

그 후배가 꽤 오래전에 동남아를 갔어요. 태국인가 베트남인가 잘 모르겠지만 암튼 둘 중 하나겠지. 거기 가서 사업 크게 해서 돈 엄청 벌었다니까. 무슨 사업인지는 우리 형도 잘 모르지만 그쪽 나라랑 관계된 사업인 거 같더라고. 거긴 정관계 쪽 줄을 잡아야 사업이 된다니까, 한국처럼. 대기업에 물건 댈 거 아니면 조달청에 볼펜이랑 지우개라도 대야 돈이 도는 것처럼.

실은 우리 형 후배가 동남아에 간 게 다 인연이 있었어요, 인연이. 그때 같은 과에 동남아에서 온 유학생이 들어왔거든. 옛날에 동남아에서 왔다면 지금보다 인상이 더 나빴어. 비쩍 마르고 얼굴 시커멓고 웬 유니버설 로고 박힌 티셔츠 입은 남자애들이 태반이었거든. 총만 쥐어주면 영락없이 쿤사 쫄병들이지. 쿤사를 모른다고? 어휴, 동남아 황금 지대 가면 금 캐서 무지하게 돈 벌던 놈 있잖아. 대학 못 간 나도 아는 쿤사를 전문대 간 네가 모르면 부모님이 네 통장에 꽂아준 등록금이 울어요. 아이 씨, 자꾸 끼어드니까 이야기가 또 안드로메다로 가잖아. 이제 궤도 제대로 잡고 동남아로 가자 좀.

이 유학생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 들어온 거야. 그렇다고 이것들이 쿤사 쫄병처럼 생긴 건 아니고, 보기에도 그 동네에서 먹고 살만 한 집 아들처럼 생기긴 했지. 그래도 뭐냐, 동남아가 지금도 못 살긴 하지만 예전엔 더 못 살았으니까 빈티 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그래서 애들이 다들 피해 다니는 거여. 교직원은 물론이고 교수들도 난감해하고. 어떤 교수는 강의실에서 대놓고 한숨 팍팍 쉬고 그랬대. 대체 쟤들은 한국말을 얼마나 알길래 들어왔냐고.

둘이 같은 과는 아냐. 하나는 경영학과고 다른 하나는 체대였어. 그래도 온 학교에서 동남아라곤 둘밖에 없으니 맨날 붙어 다녔지. 기숙사도 4년 내내 같은 방 썼고. 4인실인데 2인실로 썼지. 같은 방 배정받은 애들이 조용히 짐 싸서 학교 앞 원룸으로 갔거든. 멀리서도 둘이 다니는 게 보이면 애들이 개미떼처럼 흩어지고 그랬어. 강의실에도 옆에 앉는 한국 애는 한 명도 없었어. 전공과목이면 혼자 앉아서 듣고, 교양과목이면 나란히 둘이 앉아서 듣고.

그런데 형 후배가 걔들을 한 학기 정도 보다가 조금 불쌍해진 거야.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따돌림당하는 게 가여워진 거지. 그 형 후배도 중학교 2학년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는데, 맞은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 하도 안 놀아주고 선생 새끼들도 상대를 안 해준 기억이 있으니까 맨날 학교에 오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던 기억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말을 한 번 걸어보기로 했대. 그런데 동남아 얘가 한국말을 얼마나 하는지 알 수가 없잖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무리 동남아라도 유학생인데 기초 영어 회화는 하겠지 싶어서, 영어로 인사만 딱 한 번 하기로 했대. 그게 형 후배가 귀 빠지고 처음으로 외국인한테 말 걸어봤다는 게 아니겠냐.

드디어 같은 강의를 듣는 날, 형 후배가 항상 맨 앞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동남아 녀석 뒤에 앉았대. 바로 뒤는 아니고 두 칸 정도 뒤에. 그리고 목소리를 험험, 가다듬고 나서 뒤에 앉아 떠드는 애들 귀에 들리지 않도록 나직하게 말했대.

“Hi!”

몇 초가 지났어. 아, 너무 작게 말해서 못 들었나 싶었는데, 이 녀석이 등을 슬며시 돌리더니 입을 쭈욱 찢고 하얀 이빨을 좌악 드러내더니 큰 소리로 말하더래.

   “안녕!”

그때 형 후배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했대... 형 후배만이 아니고 강의실에 앉아 있던 애들 전체가 놀랬대. 쟤, 동남아, 한국말할 줄 아네...?

쉬는 시간에 형 후배랑 동남아랑 커피 먹고 담배 피우면서 말 몇 마디 나눴는데 알고 보니 한국말을 되게 잘하더래. 강의 노트도 한국말로 다 쓰여 있고. 한국 애들이 등 뒤에서 수군수군하는 것도 다 알아들었던 거지. 저 새끼 뭐냐, 존나 까맣다...그런 소리. 그런데 형 후배가 거기서 울컥해버린 거야. 왕따 당할 때 등 뒤에서 애새끼들 수군수군하는 거 다 들리는 거 알면서도 존나게 씹어대던 게 생각나서, 내가 아까 얘기한 거 있잖아. 피꺼솟이 돼버린 거지. 하필이면 그 형 후배도 좀 가무잡잡해서 비슷한 소리를 들었나 봐. 그것도 인연이지. 그래서 형 후배가 말했대.

 “너 술 마시냐?”

 “마신다. 맥주. 많아, 우리나라에.”

그날 강의 끝나고 둘이 호프집에 가서 앉았는데 동남아가 그러더래.

 “나 사람 불러도 돼?”

 “불러. 아는 사람 있으면.”

거기서 형 후배가 놀라 버렸어. 왜냐면, 그 동남아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거든. 휴대폰을! 그때가 말이야, 한국 사람들이 삐삐나 시티폰 갖고 다닐 때야. 휴대폰은 사업가 아님 조폭이나 있을 때였고. 물론 이삼 년 지나지 않아 금방 다들 플립 휴대폰 하나씩 끼고 다녔지만. 한국도 그럴 땐데 어떻게 동남아가 휴대폰을 갖고 다니냐고. 그 팔뚝만 한 시커먼 걸. 그 동남아가 전화해서 자기네 나라 말로 뭐라고 하더니 끊고 씩 웃더래. 형 후배는 휴대폰 비싼데 어디서 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대체 어디로 전화해서 누굴 부르는지도 알 수도 없어서 가만히 있었더래.

 “학교, 운동장에서 금방 온다고 했다.”

 “전화한 거 아니었어?”

 “전화했다.”

 “운동장 가운데 있다면서? 운동장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받아?”

 “그 사람도 전화 있다.”

형 후배는 대체 우리 학교에서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 애가 누군지 머릿속을 미친 듯이 뒤집어엎었지만 도저히 생각이 안 나더래. 그 순간...호프집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어. 같이 붙어 다니던 동남아였지. 체대 동남아. 그러니까, 그때 온 학교에서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 애가 딱 두 명인데 그 둘이 동남아 유학생이었던 거야.

이쯤 되면 형 후배는 오늘 맥주를 얻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대.

그날 이후 경영학과 다니는 동남아 유학생이랑 형 후배는 제법 친해졌어. 아무리 동남아가 한국말을 잘해도 자세한 학교 사정은 잘 모르니까 가르쳐 주고, 강의실에 나란히 앉아서 수업 듣고 가끔 술도 먹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 동남아 애들 둘이는 학교 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었대. 그래서 형 후배가 도서관에 둘 다 데리고 갔대. 기숙사 오픈 하우스 날 초대해서 놀러 간 적도 있는데 자기네 고향 음식이라고 희한한 과일 쪼개서 주더라나. 그 수박만하고 뿔이 엄청 난 과일 있잖아. 쪼개니까 냄새는 지독한데 맛은 좋더래. 경영학과 녀석은 잘 웃고 말도 잘하는데 체대 녀석은 숫기가 없는지 슬며시 복도에 나가 앉아 있었대. 들어오라고 해도 안 들어오고.

아무튼 그렇게 셋이서 2년을 지냈고 경영학과 녀석은 제법 공부를 해서 학점도 잘 받았대. 형 후배는 졸지에 통역 비슷하게 돼서 교수가 “쟤한테 뭐라고 전해라”고 시키기도 하고, 그랬나 봐. 한 번은 학과 엠티가 있어서 같이 가자고 했지만 경영학과 녀석이 그러더래.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기쁘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나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

처음에 친해지느라 술도 먹었지만 유학까지 온 애한테 맨날 놀자고 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 살아보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거 보면 왠지 가슴이 짠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형 후배도 같이 공부하게 됐대. 전공 책 펴놓고 한국말 모르는 거 있으면 가르쳐 주고. 가르쳐 주는 입장에서 잘 모른다고 하면 한국 사람 체면 상할까 봐 공부도 더 했나 봐. 서로 잘 된 거지.

그 둘이 졸업하고 귀국한다니까 마음이 아파서 눈물까지 났대. 왠지 동생 같고 그동안 더 잘해줄 걸 하면서 후회도 나고. 한국 사람이 정은 많잖냐.

 “우리나라 꼭 놀러 와라. 놀러 와서 전화해라. 나 휴대폰 번호 기억해라.”

 “누가 다문화 아니랄까 봐 존댓말 끝까지 못 배웠구나.”

 “한국말 존댓말 어려워. 그래도 이건 한다. 안녕히 가세요!”

형 후배가 공항에서 둘이 짐 들고 탑승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그러더래.

 “아유, 둘이 일 열심히 했나 봐요. 배웅을 다 나오시고. 많이 서운하신가 봐요, 사장님?”

그러구 아이엠에프 터졌지. 형 후배도 그때 직격탄 맞았고. 나도 맞고, 여기 있는 우리 다 맞았지. 어떻게 일 년 사이로 취업문이 그렇게 콱하고 막혀버릴지 누가 알았냐. 아이엠에프 이전에 자리 못 잡은 사람들, 지금 이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자리를 못 잡잖아. 늙은 것들은 은퇴할 생각을 안 하고 일은 일대로 떠넘기고... 내가 얘기하다 딴 데로 빠졌네.

암튼 형 후배도 졸업하고 백수 됐다가 알바 하다가, 무슨 계약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떠돌다가 잘리고, 다시 취준하고 그러면서 한참을 보냈어. 애써 들어간 중소도 부도 맞는 바람에 월급도 못 받고 그만두고 집에서 놀게 됐지. 하루는 할 일이 없어서 가입만 하고 내버려 둔 페북을 뒤지는데 바로 동남아한테서 메시지가 와 있더래. 반가워서 스카이프 영상통화로 밤새 이야기를 나눴지. 여자 친구 있냐? 결혼은 했냐? 살 만하냐? 한국은 힘들다, 뉴스 봐서 다 안다, 동남아도 소로스 때문에 망할 뻔했다... 등등 쌓인 이야기 나누다가 그러더래.

 “안 바쁘면 우리나라 놀러 와라.”

 “나도 가고 싶어. 그런데 돈이 없어.”

 “와.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캬, 그때 안 갔으면 어쩔 뻔했대.

형 후배가 나중에 말하길 말이야. 맨날 넣어도 떨어지는 취직 원서 쳐다보기도 싫고, 안 그래도 가슴에 바람 한 번 시원하게 집어넣고 싶은 심정도 간절했고, 무엇보다도 왠지 가 봐야 할 것만 같은 강렬한 땡김을 느꼈다는 게 아니겠어. 가서 별 일 없더라도 친구 만나 여행 한 번 잘했으니 후회할 것도 없을 거고. 그래서 그날 밤 제일 빠른 항공권 편도로 끊어서 새벽에 날랐대. 부모님한텐 도착해서 전화 한 통 때렸고.

가서 어떻게 됐냐고? 야, 들어봐. 알고 보니까 그 경영학과 친구 말이야. 사실 그 나라 왕자였다는 거 아녀. 만수르 같은 거. 곁가지지만 어쨌든 왕자였대. 그리고 같이 왔던 체대 동남아 유학생이 누군지 알아? 왕자 경호하는 하인 겸 보디가드였다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둘이 기숙사 방도 같이 쓰고, 휴대폰 갖고 다니면서 실시간으로 서로 통화했던 거야. 형 후배는 졸지에 그 왕자마마 한국말 통역이 됐던 거고. 그 왕자는 졸업하고 자기 나라에서 사업하다가 우연히 한국 친구가 할 일이 없다니까 일 시키려고 불렀던 거야. 생각해봐라. 왕자님이 한국에서 경영학 대학까지 나오셔서 하시는 사업인데 얼마나 잘 되겠어. 당연히 나라에서 밀어주고 땡겨주는 거지.

아무튼 그 형 후배는 그 길로 정착했다. 지금도 그 왕자님 사업 도우면서 풀장 있는 이층집에서 리무진 타고, 가정부한테 칵테일이나 타오라면서 폼 나게 산 댄다. 캬, 남자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집애들이 뭘 모르는데, 의사 판검사만 찾지 동남아 산다면 일단 거르고 본다니까. 내가 여동생이 있었으면 진작 밀어 넣었지. 어쨌든 너네들 동남아 애들 욕하지 말고 잘 대해줘. 따지고 보면 걔네들이랑 우리 월급도 별로 차이 안 나. 어쨌든 인생 어디서 잭팟날 지 모르니까.

주애령(필명)
1980년생. 소설가, 문화 칼럼니스트.
편집동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박사 졸업. 2017년 계간 <21세기 문학>, 아동문학 계간지 <어린이책 이야기>로 등단. 저서로 『동화, 영혼의 성장』, 경향신문 영화소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연재(2005), 대중음악 웹진 음악취향Y 필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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