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3) / 우리는 모두 이별을 – 김윤배의 ‘이별 형식’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3) / 우리는 모두 이별을 – 김윤배의 ‘이별 형식’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2.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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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3) / 우리는 모두 이별을 – 김윤배의 ‘이별 형식’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3) / 우리는 모두 이별을 – 김윤배의 ‘이별 형식’

  이별 형식 

  김윤배

  *

  동백꽃은 
  자신의 모가지를 뚝 꺾어 뛰어내리는 것으로
  이별을 완성한다
  살모사는
  갓 태어난 새끼에게 어미의 몸을 내주는 것으로
  이별을 완성한다
  사막큰뿔양은 
  뿔이 너무 커 제 몸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높은 곳에 올라가 뛰어내리는 것으로
  이별을 완성한다
  거미는
  자신이 쳐놓은 거미줄에 무덤을 짓는 것으로 
  이별을 완성한다

  동백꽃과 살모사와 사막큰뿔양과 거미의 이별 형식은 산뜻하고 숙연하다

  *

  헤어지자는 여자에게 회칼을 휘둘러
  이별을 완성한 남자를 TV 화면에서 본다

  호모사피엔스의 이별 형식은 때로 

  —『마침내, 네가 비밀이 되었다』(Human  & Books,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33) / 우리는 모두 이별을 – 김윤배의 ‘이별 형식’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동백꽃과 살모사와 사막큰뿔양과 거미는 이별의 형식이 산뜻하여 시인은 숙연함을 느꼈나 보다. 그에 반해 인간은 어떠한가. 헤어지자는 여자에게 회칼을 휘둘러 이별을 완성한다.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잔인하게 이별의 형식을 완성한다. 연인 간이 아니라 가족 간에도 이런 식으로 이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만물의 영장? 곤충보다 못한 것이 인간이다. 

  몇 해 동안 펜팔을 했던 무기수가 있었다. 그는 바로 이런 식으로 그녀와 헤어졌다. 사건이 나고 10년이 흐르고 15년이 흐르고 20년이 다 되자 그녀의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사랑이 죄였다고 했다. 정말 사랑했다면 그녀의 마음이 식어갈지라도 수긍하고 돌아섰어야 하는데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이별의 형식을 완성했다. 딸을 잃은 한 집안이 와르르 무너졌고 아들을 교도소에 영원히 보낸 한 집안이 산산조각 났다. 

  김광석의 노랫말대로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안녕! 빠이빠이! 잘 가! 인사를 하며.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는 말로 한용운은 이별이 완전한 결별이 아님을 역설했지만 우리는 모두 헤어지고만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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