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2) / 혀 짧은 이의 고뇌 - 박제영의 ‘이중모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2) / 혀 짧은 이의 고뇌 - 박제영의 ‘이중모음’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2.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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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2) / 혀 짧은 이의 고뇌 - 박제영의 ‘이중모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2) / 혀 짧은 이의 고뇌 - 박제영의 ‘이중모음’

  이중모음 

  박제영


  이중모음을 발음하지 못하는 그의 세계는 중학교 국어시간에 자기가 대포로 발포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늘 세개였지만 세계는 여전히 하나였다 어른이 되었지만 그의 겨울은 늘 거울 속에서 하얀 눈이 내렸고 그의 여름은 어름 속에서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언제나 여자를 좋아했지만 만나는 여자마다 그의 어자를 싫어했다 그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세개가 싫어 거울이 싫고 어름이 싫고 어자가 싫어

  —『그런 저녁』(솔시선 22,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2) / 혀 짧은 이의 고뇌 - 박제영의 ‘이중모음’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2) / 혀 짧은 이의 고뇌 - 박제영의 ‘이중모음’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이 시의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일까? 실존인물이라면 동정심이 솟구쳐 가슴이 다 먹먹해진다. 동병상련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가 무슨 말을 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는데 정작 발화자는 수치심에 몸을 떨게 된다. ‘제가 대표로 발표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총이 아닌 대포로 발포하겠다고. 아마도 그때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이중모음을 말하지 못하는 그의 짧은 혀는 세계를 세게로, 겨울을 거울로, 얼음을 어름으로, 여자를 어자로 발음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비웃음의 대상이 돼보지 못한 사람은 그의 비애, 수치심, 자괴감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경상도 사람이어서 그런지 ‘으’와 ‘어’ 발음을 선명하게 구분해서 쓰지 못한다. 가령 ‘정재언’이라고 출석을 부르면 학생들 몇이 입을 모아서 “정재은!” 하고 외친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놀리는 것이 재미있나 보다. 

  나는 고교 생활을 2개월로 작파하고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에 서기까지 검정고시 준비 등으로 5년 동안을 무적자로 보냈다. 그 사이에 말더듬이가 돼버렸다. 대학교 1, 2학년 때는 꽤 심해서 죽을 고생을 했다. 내 육성을 시로 옮겼더니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이 시로 당선이 되자 기적같이 말더듬이가 사라졌다. 「이중모음」의 주인공이 혀의 문제라면 지금도 그럴 것이다. 놀림감이 되곤 했을 그분께 악수라도 청하고 싶다. 어깨동무라도 하고 싶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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