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7) / 무관심은 죄악이다 - 임희구의 ‘흉몽’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7) / 무관심은 죄악이다 - 임희구의 ‘흉몽’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2.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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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7) / 무관심은 죄악이다 - 임희구의 ‘흉몽’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7) / 무관심은 죄악이다 - 임희구의 ‘흉몽’

  흉몽 

  임희구


  순간 장면이 바뀌어 을지로다  
  버스에 막 올라타려는데 버스가 급출발한다
  문에 매달려 위태롭게 올라선다
  올라서서 버스 기사에게 버럭 소리친다
  왜 사람이 올라서기도 전에 출발하는 거요?
  기사가 되받아친다
  당신이 버스를 얼마나 위험하게 탔는지 알아?
  기사와 나는 계속 실랑이한다
  을지로에서 탄 버스가 북쪽으로 달렸는데
  엉뚱하게 노량진 근처다
  버스 기사를 자세히 보니 취중이다
  기사님! 지금 술 마시고 운전하는 거죠?
  순간 버스가 멈추고 차 안이 술렁인다
  사이, 몇몇의 승객이 바뀌고 
  버스는 낯선 정거장에서 오래 정차 중이다
  나는 수첩을 꺼내 들고 버스를
  처음 탔을 때부터의 사건들을 적는다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승객들에게 물어본다
  누군가 운전석 의자를 젖히고
  청소를 한다 음주 기사가 슬쩍 사라지고
  새로운 기사가 올라탄다 나는 계속 버스의
  문제점들을 들먹이며 여론을 형성하려 애쓴다
  승객들은 가끔 웃기도 하지만 시종 무관심이다
  누구도 나의 투쟁에 버스의 문제점에 대해
  동조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몇 사람이 내리고 또 몇 사람이 올라탄다
  버스가 다시 급출발한다

  —『창작21』(2019년 가을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7) / 무관심은 죄악이다 - 임희구의 ‘흉몽’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현실상황이 아니라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서울시내 버스 기사가 취중 운전을 할 리 만무하며, 을지로에서 탄 버스가 북쪽으로 달렸는데 노량진 근처라니 말이다. 이 시는 전체가 알레고리다. 임희구 시인은 이 땅의 정치상황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시어를 ‘무관심’으로 꼽고 싶다.

  화자가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기사에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승객들이 보인 태도는 (다른 기사로 바뀐 뒤였지만) “가끔 웃기도 하지만 시종 무관심”이었다. “누구도 나의 투쟁에 버스의 문제점에 대해/ 동조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이 시의 핵심주제다. 

  최근에 어느 대학원생이 말하길,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치에 무관심했는데 사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고 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지지고 볶고 싸우고, 검찰과 경찰이 다투고, 태극기를 든 이들과 촛불을 든 이들이 다른 장소에 모여서 구호를 외쳐도 그는 왜 이 모든 정치상황을 먼 산 불 보듯이 했을까? 정치가가 꼴 보기 싫고 어느 편에 들어가 다른 편을 욕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시인은 외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럼 안 된다고.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흉몽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그렇다. 화자의 의로운 행위에 대해 우리가 수수방관할 때 이득을 취하는 권력집단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에 갇혀 사는 가금(家禽)이 될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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