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49) / 벽 안에서 사는 자들 - 전선용의 ‘우상향’
우상향
전선용
수감번호를 먹어치운 철문 안에
두보모처럼 잘린 햇살이 들이치면
창살은 내 몸을 가르는 칼이 됐다
아직 결산하지 못한 미결의 생
크레바스에 빠진 죄가 묵직해서
철문 닫히는 소리는 단두대에서 칼이 떨어지는 것 같다
퇴로가 없는 감옥에서 찬송가를 부르다가
반야심경을 외우다가 대답 없는 신을 호객하면
춘삼월 벚꽃은 시도 때도 없이 흔들렸다
어깨에 별을 달았으므로 오늘부터 나는 외계인,
이퀄라이저 같은 삶에 대해
몇몇 수감자들은 별을 말하고 있다
화성인간끼리 별을 무게를 가늠하는데
무중력을 벗어난 형량은 가난 때문에
막연하게 떠다닌다
이제 상종칠 일만 남았다고,
겨울이 너무 길다고 속옷을 껴입을 때
죄의 신열은 우상향했다
이자를 내기만 했지 붙기는 처음
바닥을 쳐본 사람만 아는 영치금 계좌에서
별일이 생겼다.
—『지금, 환승중입니다』(도서출판 움, 2019)

<해설>
한동안 소년원, 구치소, 교도소를 내 집 안방처럼 들락거렸다. 수의를 입고 가슴에 번호를 붙인 사람들 앞에서 시 작법을 가르치고 시 습작을 시켰다. 범생처럼 생긴 나를 그들은 처음에는 실눈을 뜨고 보았지만 헤어질 때는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다. “저는 운전을 못하는데 앞으로도 안 배울 겁니다. 지하철에서 절 보면 아는 척해 주세요. 안양교도소 출신이라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놀랄 테니까 안양 출신이라고만 말하십시오.” 이 말을 하면 그들은 크게 웃었다.
이 시의 앞 3연은 미결수 때의 상황이다. 구치소에서 재판정을 오간다. 몇 년 형을 받을지 모르므로 긴장되고 초조하다. 어떤 일요일에는 찬송가를 부르고 어떤 일요일에는 반야심경을 외운다. 종교의 창시자라면 알라나 마호메트도 찾고 싶다. 그러다 판결이 떨어지면 교도소로 이감된다. 기결수로서 확정된 형을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깨에 별을 달고, 외계인으로서.
이퀄라이저는 주파수대 각각의 상대 강도를 조정함으로써 수신한 신호를 조절하는 기기이므로 “이퀄라이저 같은 삶”이란 동료들과 함께 닫힌 공간에서 살아가는 수감 생활을 표현한 것이다. 재수 없으면 무서운 방장 밑에서 숨소리도 크게 낼 수 없고 재수 좋으면 상부상조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살아간다. 개과천선하는 경우도 있고 그 안에서 절도 기술을 마스트하기도 한다.
죄의 신열이 우상향(그래프에서 선의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형태)했다는 것은 아직도 그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말―유전 무죄, 무전 유죄―을 떠올리게 한다. 하하, 어느 날 기막힌 일이 생겼다. 영치금 통장에 누가 돈을 넣었나, 몰래 넣어두었던 주식의 시세가 치솟았나, 참 별일이 다 생겼다. 바닥을 친 인생은 주식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여길 나간다면, 나가기만 한다면.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