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1) / 지긋지긋해라 - 백윤석의 ‘스팸메일’
스팸메일
백윤석
1
한 톨 씨앗 잎눈 뜨는 문패 없는 내 뜨락에
잔뜩 덧난 상처마냥 몸 불리는 메일들이
용케도 바람벽 넘어와
술술 옷을 벗는다
끊임없이 거듭되는 공복의 내 하루가
한순간 눈요기로 허기나마 면해질까
꼿꼿이, 때론 덤덤히
삭제키를 눌러댈 뿐
2
눈발처럼 떠다니는 많고 많은 인파 속에
어쩌면 난 한낱 눈먼 스팸메일 같은 존재
무참히 구겨진 채로
휴지통에 던져질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외로 선 골방에서
팽개쳐져 들어앉아 변명조차 잊었어도
엉켜진 오해의 시간
술술 풀 날 기다리는.
—『스팸메일』(책만드는집, 2019)

<해설>
백 시인도 그런 모양이지만 나한테도 정말 많은 스팸메일이 온다. 무슨 카드니 무슨 이벤트니 하면서 오는 것은 그래도 불쾌하게 하지는 않는데 게임도박을 하라느니 비아그라를 구입하라느니 하면서 오는 메일은 화를 치밀게 한다. 스팸신고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스팸메일 자체가 신종 바이러스 같다. 박멸했다고 생각해도 다시 나타나 사람을 괴롭힌다.
시인은 스팸메일을 “잔뜩 덧난 상처마냥 몸 불리는 메일들”이라고 했다. 그놈들은 “용케도 바람벽 넘어와/ 술술 옷을 벗는다”, 즉 화자를 유혹한다. 화자는 “꼿꼿이, 때론 덤덤히/ 삭제키를 눌러댈 뿐”이다.
2번 시조에서 스팸메일은 변신을 한다. 화자가 바로 스팸메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인가로 오해를 사 타인에게 완전히 소외되어 골방에 들어앉는 신세가 된다면? 엉켜진 오해의 시간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딱한 처지가 된다면 스팸메일이랑 별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우리는 타인에게 스팸메일 같은 존재가 되면 안 된다고 백윤석 시조시인은 주장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