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3) / 모자의 대화 - 박덕규의 ‘뉴스가 흐를 때’
뉴스가 흐를 때
박덕규
소설가 한강 님이
맨부커 상 국제부문을 수상했다는 뉴스가
흐를 때였어요. 6인실 병동에서
그걸 눈여겨보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무심히 텔레비전 화면에 눈길을 두고 있던 엄마 표정이
좀 이상했어요. 입가로 흘러내린 침을 닦아주며
제가 물어봤지요.
엄마 생각나?
나 대학 합격 메시지 받던 날
나 업고 덩실덩실 춤추던 거?
엄마가 고개를 돌려
제 눈을 똑바로 쳐다봤어요.
그러더니 띄엄띄엄 말하셨어요.
글
쓰는
거?
어제는
그 새벽 제 옆에서 갑자기 쓰러지신 엄마가
병원으로 옮겨져 두어 살짜리가 된 지
딱 4년 된 날이었어요.
—『날 두고 가라』(곰곰나루, 2019)

<해설>
박형!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 낮술을 마시게 하고, 술김에 펑펑 울게 하고!
저는 이 시 속의 정황이 대체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은 소설가이기도 하니까 허구를 교묘하게 섞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이라고 믿고서 형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이 글을 씁니다.
소설가 한강 님이 맨부커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시점이니 2016년 봄이었겠네요. 치매노인인 어머니와 막내 덕규가 6인 병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형은 스무 살 무렵에는 몸이 꽤 가벼웠나 봅니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아들을 업고 덩실덩실 춤을 췄으니까요. 그때 일을 말하자 어머니는 정신이 잠시 돌아왔나 봅니다. 이렇게 묻습니다.
글
쓰는
거?
저는 형 어머니의 아들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기특하고 대견했던 것이지요. 어머니의 이런 환호작약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겠죠. 형이 중ㆍ고등학교 시절에 어머니 속을 꽤 많이 썩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녀석 실력으로는 대학에 절대로 갈 수가 없는데 합격을 했다니 너무너무 좋아서 아들을 업고 덩실덩실 춤을 췄던 것입니다. 태동긴지 뭔지 글 쓰는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서 어머니 속을 푹푹……. 그래서 더욱 기뻤던 것이겠죠.
어머니는 몇 년을 고생하셨나요? 치매환자는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니 주변사람들이 고생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치매환자로 요양병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지요. 가족의 가슴앓이야 애간장을 녹입니다. 내 어머니가 날 알아보지 못할 때, 존댓말을 할 때, 자식은 가슴이 찢어집니다. 박형! 고생 많았습니다. 알고 보니 효자였네요. 이 시의 사실 여부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병 깊은 어머니 앞에 선 자식은 다 죄인인 것입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