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4) /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 이승하의 ‘자식의 명’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4) /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 이승하의 ‘자식의 명’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2.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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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4) /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 이승하의 ‘자식의 명’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4) /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 이승하의 ‘자식의 명’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4) /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 이승하의 ‘자식의 명’

  자식의 명  
  ―목공 요셉의 혼잣말

  이승하

  
  베들레헴까지는 150킬로미터나 된다는군
  어린 약혼녀 건드리지 않았는데 임신이라니
  이게 다 하느님의 뜻이라는데 믿어야 하나

  처음엔 오해하고 고민했는데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이니 믿을 수밖에 
  안 그러면 마리아가 나를 떠날지 몰라
  세상 사람의 구설은 두렵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너무 큰 형벌
  
  베들레헴의 여관엔 웬 사람이 이렇게 많나
  방 하나 남은 게 없다니 
  외양간이라도 감지덕지라라고?
  
  내 약혼녀는 열다섯
  얼른 결혼하고 호구조사 등록하러
  찾아간 베들레헴에서의 출산이라니
  강보에 싸인 아기 말구유에 누워 있다

  나 참 뭐 이런 데서 태어났는데 
  내 아이가 큰 인물이 된다고? 
  고생문이 훤하게 열린 건 알겠지만 
  명이라도 좀 길었으면 좋겠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4) /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 이승하의 ‘자식의 명’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오늘 날짜에 맞는 시를 찾다가 찾다가 못 찾아서 하는 수 없이 졸시를 올립니다. (부디 이해를……) 

  신약성경에서 전혀 부각되지 않은 인물이 누굴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자들,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본시오 빌라도 총독, 헤로데 왕, 바리사이파 사람들, 로마에서 온 병사들……. 그런데, 저는 나사렛 예수의 의붓아버지 목공 요셉이 자꾸 생각나 위의 시를 써보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버지라는 불쌍한 족속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존경하는 아버지? 거의 없지요. 아내가 전폭적으로 믿고 응원해주는 중년의 남편? 못 봤습니다. 설사 사회적으로 존경을 좀 받더라도 집에 가면 반기는 것은 강아지밖에 없습니다. 

  요셉을 주인공으로 시를 써보았습니다. 2000여년 전, 나사렛 땅의 평범한 가장인 목공 요셉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호구조사 등록을 각자 고향에 가서 하라는 폭군 헤로데 왕의 명이 있자 멀고먼 베들레헴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말입니다. 여관방들이 동이 나 마구간에서 자식을 낳게 된 어린 아내를 지켜보자니 가슴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세 명의 털보가 찾아와서 축복을 한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하겠다 난리를 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앙앙 울어대는 저 아기가 전염병에 걸려 일찍 죽지 않고 그저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아주기를 바랐겠지요. 목수 일을 제대로 가르쳐야지, 굳게 결심했을 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술이 있으면 굶어죽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웬걸, 아들은 나이 서른이 되자 가출을 합니다. 12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영 께름칙했겠지요. 특히 아들이 대중연설을 할 때,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요? 저 자식 저러면 큰코다칠 텐데.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붙잡혀가더니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날, 마리아는 손과 발에 못 자국이 선명한 아들을 껴안고 대성통곡을 하지만(피에타), 요셉은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어디 숨어서 울고 있었을 겁니다. 목공일 하나는 제대로 가르쳤는데, 장가를 보내 독립을 진작 시켰더라면…… 가슴 아픈 후회가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했을 테지요. 

  조르주 무스타키의 노래 <내 오랜 친구 요셉(mon vieux Joseph)>을 듣습니다. 아들을 십자가 처형이라는 끔찍한 형벌로 잃은 아버지의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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