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6) / 우리는 모두 다 - 이영희의 ‘최인호’
최인호
이영희
박완서의 위로편지
100살까지 살 테니깐
나보다 빨리 데려가지 말아 달라는
하나님께 대한 으름장이야
박완서를 먼저 데려가셨다
그의 바람대로
2년 만에
신문에 실린 그의 서재
창가 책상 위에 그가 붙들고 견디어 온
성경, 몇 장의 사진, 박완서 편지 덩그러니
사람 없는 책상 부재의 공간이 무상하다
이해인 수녀의 오빠 이인구 씨가 있다
글 쓰는 카피라이터 그도 침샘암
작년인가 오비 광고인 연말 모임에 나왔다
한쪽이 움푹 파인 얼굴을 해가지고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가 견뎌 온 고통이 안쓰러워서라기보다
얼마나 사람들이 그리웠는가가 느껴져
손을 꽉 잡았다
그냥 활짝 웃어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은 말했을 것이다
얼마나 힘드셨어요
보고 싶었어요 여러분들이
—『일흔이에요』(나남,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6) / 우리는 모두 다 - 이영희의 ‘최인호’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news/photo/201912/71208_42661_1531.jpg)
<해설>
소설가 최인호는 침샘암으로 작고했는데 만 68세 때였다. 서울고 재학 중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였다. 신문사 문화부에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소년이 나타나자 모두 기절초풍을 했다고 한다. 당선이 아니어서 그나마 안도하였고. 눈발 날리는 연병장에서 얼차려를 받다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네가 최인호냐? 빨리 행정반으로 가봐, 신문사에서 널 찾는대.
최인호는 50년 동안 소설을 썼던 진정한 소설가였고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소설가의 입을 병마가 찾아와 닫아버렸다. 오래 투병했지만 최인호는 결국 불귀의 객이 되었다. 박완서 선생이 최인호의 투병 소식을 듣고 위문편지를 보냈는데 2년 8개월 먼저 떠났다. 시의 제목은 ‘최인호’인데 실제 주인공은 이 두 사람이 아니라 이해인 수녀님의 오빠 이인구 카피라이터다.
이 시의 화자는 오비 광고인 연말 모임에 갔다가 한쪽이 움푹 파인 얼굴을 한 이인구 씨를 만난다. 최인호와 마찬가지로 침샘암으로 고생하고 있던 중이었다. 화자는 이인구 씨의 손을 잡으며 무언의 눈인사를 건넨다. 눈으로 말한 내용은 상상의 산물이다. ‘얼마나 힘드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보고 싶었어요 여러분들이’ 하고 대답한다. 병마와 오래 싸우게 된 사람은 외로움이라는 더 무서운 적과 싸워야 한다. 최인호도 얼마나 외로웠으랴. 100살까지 살 거라는 박완서 선생의 편지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으랴. 이인구 씨는 그 뒤에 대장암에도 걸렸지만 잘 극복하고 지금도 건재해 계신다고 한다.
새해에는 모두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잘 챙기기를 바랍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