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7) / 길이 집인 사람들 - 현종길의 ‘다이달로스의 날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7) / 길이 집인 사람들 - 현종길의 ‘다이달로스의 날개’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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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7) / 길이 집인 사람들 - 현종길의 ‘다이달로스의 날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7) / 길이 집인 사람들 - 현종길의 ‘다이달로스의 날개’

  다이달로스의 날개 
  —노숙자

  현종길 


  지구의 숨구멍 같은 지하철 통로 한쪽 벽
  흰 장대 같은 의족을 한 남자가 
  종잇장 같은 손을 내민다
  밥 한 끼 값을 그에게 주었다
  양같이 선한 눈빛의 그가 머리를 숙일 때
  한파에 지하도 불빛처럼 반사되는 하얀 의족이 
  아프게 읽힌다
  바코드같이 까만 틈과 틈 사이에서 칩처럼 끼어
  부러진 날개로 동굴 속에 갇힌 이카로스 
  시간의 틈마다 손톱이 닳도록 코드를 맞춰보지만
  그 꿈은 오늘도 전철이 삼키고 간다
  방울뱀의 경고 같은 호각 소리가 뒷목을 누르는 밤
  뱀처럼 스멀스멀 기어드는 냉기 속으로 
  먼지같이 툭툭 차인 몸 그믐밤처럼 어둡다
  외발로 선 이카로스의 오늘과 내일 사이가 길다
  신화처럼 다이달로스의 날개를 달고 
  그가 별 밭으로 날아가기를 빌며
  나는 막차를 탔다

  ―『카르페 디엠』(도서출판 문장21,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57) / 길이 집인 사람들 - 현종길의 ‘다이달로스의 날개’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뛰어난 건축가이며 조각가이기도 한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을 방문하여 미노스왕의 환대 속에 지내며 왕의 시녀와 정분이 나 이카로스를 낳았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미궁에 갇히게 되는데, 함께 하늘로 날아 탈출하였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의 시신을 건져 올려 섬에 묻었는데, 나중에 이 섬은 이카로스의 이름을 따서 이카리아 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신화에서 비롯된 ‘이카로스의 날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상징한다(두산백과 참조).

  날이 이렇게 매섭게 추우면 노숙자들의 안부가 걱정된다. 이 시의 화자는 동정심이 많아 의족을 한 노숙자가 손을 내밀자 밥값을 준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인생살이의 비의를 알기 때문에 살아났고 아들 이카로스는 철없이 굴다 죽고 말았는데 화자는 노숙자가 다이달로스의 길을 따르기 바란다. 계속해서 노숙의 삶에 만족하지 말고 별 밭으로 날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집’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다. 직유법이 너무 잦은 것은 좋지 않다. 

  지방에 갔다가 서울역이나 용산역에 밤늦게 도착하면 노숙자를 보게 된다. 여름에는 빈 박스가 이불이고 겨울이면 담요 같은 것을 덮고 잔다. 체온으로 담요를 덥혀서 자는 것이니 편한 잠자리일 턱이 없다.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면 동사하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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