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0) / 시 쓰는 어머니 - 김은지의 ‘마지막 문장’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0) / 시 쓰는 어머니 - 김은지의 ‘마지막 문장’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2.3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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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0) / 시 쓰는 어머니 - 김은지의 ‘마지막 문장’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0) / 시 쓰는 어머니 - 김은지의 ‘마지막 문장’

  마지막 문장 

  김은지 


  엄마가 당신이 쓴 시를 읽어보라고 줬다
  나는 다 좋은데 마지막 문장이 좀 뜬금없다고 했다
  엄마는 니가 뭘 아냐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문에서 읽어 온 시가 얼마며,
  두보도 서정주도 다 읽은 사람이고
  문창과에 다닌다는 애가 이제 보니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네, 라며
  엉크렇게 화를 냈다

  그게 아니라 나는 일이삼사 연이 다 좋다, 다 좋은데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마치 내가 금강산을 다녀온 느낌까지 들었다
  이런 표현은 어떻게 떠오른 거냐, 찬찬히 내 감상을 전한 뒤
  그런데 마지막에 이런 마무리는 일기 같다랄까 아쉽다고 했다
  엄마는 그러니까 니가 시를 뭘 아냐며, 내가 지금까지 신문에서 읽어 온 시가 얼마며
  봄가을이면 백일장에서 매번 상금도 타 오고
  누구 엄마도 읽어보더니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냐며 그랬는데 넌 뭐냐, 라며 화를 냈다

  엄마가 이렇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니
  내가 뭐 시를 못 썼다고 한 것도 아니고
  한 문장 정도 이견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냐
  문장을 지적하는 게 이렇게 기분 나쁜 거였나 문창과 친구들은 정말 강철 심장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차릴 때엔 한 발 물러나
  엄마, 아마 내가 시를 많이 못 읽어봐서 이런 표현 방식에 익숙하지 못한가 봐요,
  어렵게 말을 건네 봤다
  그러자 그건 정말이지 니가 몰라서 이해를 못하는 거다, 라며
  그 마지막 문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엄마가 이렇게 오래 화를 안 푸는 사람이었다니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아니라 허만분 씨를 화나게 만들었다
  엄마 다시 보니 마지막 문장이 괜찮아요
  어제는 미안했어요
  다음 날 사과까지 했지만
  사과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엄마는 계속 시를 쓰고 있다
  엄마가 엄마 얘기 글로 쓰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자꾸 엄마 얘기를 쓰게 된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마지막 문장은 그렇게 일기 같지도 않았다

  —2016년 『실천문학』신인상 당선작

 

  <해설>

  화자는 모 대학 문창과 학생이고 그녀의 어머니는 뒤늦게 시 공부를 해 주부 백일장에 나가 상도 타 오는 등 시 쓰기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내는 늦깎이 문학도다. 문창과에 다니는 딸이 아니라면 어머니가 이렇게 자존심을 상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좀 뜬금없다는 말에 팩 토라진 어머니는 종내 화를 풀지 않는다. 네가 내 시를 뭐 알고서 토를 다느냐고 화를 내는 어머니의 심리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시의 재미는 “문장을 지적하는 게 이렇게 기분 나쁜 거였나 문창과 친구들은 정말 강철 심장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사실 문창과 실기수업 때 종중 지적하는 것이 문장인데 시 소설 다 마찬가지다. 시의 경우도 비문(非文)이나 악문(惡文)이 속출한다. 독서경험이 부족한 학생은 아무래도 문장력이 딸린다. 이 시의 화자는 마음이 무척 약한데, 본인도 강철 심장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공사(公社)는 취직하기가 아주 어려운 곳이다. 소위 스카이 대학을 나온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어느 공사의 홍보실에 근무하는 후배한테 들은 이야기다. 영어실력이 토익 만점대, 재2외국어도 프리토킹이 가능한 실력을 갖춘 신입사원을 뽑아서 교육을 시키다 보면 국어 실력이 너무 안 좋아 실망을 넘어 절망스럽다고 했다. 기안서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한글 문장을 제대로 쓰는 신입사원이 거의 없다는 말을 했다. 영어와 제2외국어 학습에 워낙 어릴 때부터 전력을 다하는 바람에 국어실력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모국어 학습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난감하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구미 각국은 에세이 쓰기가 시험인데 우리는 오지선다형으로 국어문제를 풀게 한다고 논술고사를 강조하기도 했다. 외국에 나가 살 게 아니라면 어릴 때부터 외국어 학습에 전력을 다할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자. 

  (‘엉크렇다’는 잘못 쓴 것인 듯. 충북에서는 ‘베어놓은 풀이나 볏단 등이 성기다’나 ‘불룩하다’란 뜻으로 쓰고 경북에서는 ‘엉성하다’란 뜻으로 쓰는데 어디에도 맞지 않는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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