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3) / 아름다운 풍경 - 류근택의 ‘너, 끝날까지’
너, 끝날까지
류근택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길을 걸어보아라 그리움이거나 애타는 심정까지 낮보지는 말고 손끝으로 밀려드는 고독에 담아 심장 가까운 곳 어디쯤 담아보아라 노도처럼 흐르는 강물, 시원을 찾아 오르고 오르면 어느덧 맑은 샘물 솟아나고 졸졸 흐르는 고운 영혼 만나리 하면, 손등을 타고 흐르던 그 전율 점차 짙어지는 혈연의 질서로 서리라 시간 흘러 안개처럼 퍼져 오르거든 가만히 속삭여보아라 핏줄 타고 흐르는 핏빛 정령 선연한 계시는 꼭 껴안고 여린 손, 보드라운 희열, 손이란 손은 잊지 말고 살며시 잡아주어라 너, 끝날까지 잡아주어라
—『빛이 있는 동안에』(미네르바 시선, 2019)

<해설>
시의 화자는 할아버지다. 손녀의 손을 잡고 길을 가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본다. 손녀의 생은 창창하겠지만 화자는 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손녀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 “손끝으로 밀려드는 고독”이라니, 너무한 것 아냐? 하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70대 중반이 돼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 나이가 된다면 생로병사의 비의(悲意)을 십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내가 암 환자라면?
화자는 걷는 동안 생각을 바꾼다. 젊은 날에는 “노도처럼 흐르는 강물”을 자주 보았지만 “어느덧 맑은 샘물 솟아나고 졸졸 흐르는 고운 영혼”을 만나게 되었다. 이 여린 손을, 보드라운 희열을, 내 생의 ‘끝날’까지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면 할아버지와 손녀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핏줄 타고 흐르는 핏빛 정령 선연한 계시”는 생명의 신비를 말해주는 문장이다. 화자가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났다는 것도 우주의 신비요 손녀가 태어나 할아버지와 손잡고 얘기하면서 길을 가고 있다는 것도 기가 막힌 신비다. 시에서 ‘너’는 시적 화자다. 내 생의 끝날까지 이 신비로움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읽혀 평자는 자못 경건해진다. 우리 모두 뭇 생명을 아끼고 돌보는 마음을 가져야 할 텐데…….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