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264) / 저 금강송처럼 - 임동윤의 ‘직립의 조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264) / 저 금강송처럼 - 임동윤의 ‘직립의 조건’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0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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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264) / 저 금강송처럼 - 임동윤의 ‘직립의 조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264) / 저 금강송처럼 - 임동윤의 ‘직립의 조건’ 

  직립의 조건

  임동윤 


  늘 푸른 사내들이 눈밭에 누워 있다, 간밤
  대설경보에 꼿꼿하던 몸뚱이를 결딴낸 것
  시퍼렇게 드러난 뼈의 결기가 눈밭에 나뒹군다

  물푸레나무처럼 마냥 허리 조아리지 못한 탓
  현란한 수사나 구차한 변명도 없이
  아득한 허공 움켜잡으려고 한눈팔지도 못한 탓,

  적당히 머리 숙이는 일은 비렁뱅이나
  야바위꾼들이 하는 짓, 별빛
  그 그리움을 안 뒤부터 오직
  직립의 하늘 오르는 일만 가슴에 품었을 뿐

  차라리 꺾일지언정 휘어질 수 없다는,
  뼈를 드러낸 칼날이 눈보라를 베고 있다
  눈 붉힌 자들이 숲길 저쪽으로 사라지는,
  직립의, 저 푸르른 결기가 나는 무섭다

  —『시와 소금』(2019년 겨울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264) / 저 금강송처럼 - 임동윤의 ‘직립의 조건’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하늘을 향해 곧게 치솟아 있는 금강소나무를 보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보통 소나무는 굽이굽이 휘어휘어 자라는데 금강소나무는 마치 시베리아 벌판의 자작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다. 사전을 찾아보니 ‘늘 푸른 바늘잎 큰키나무’라고 한다. 메타세쿼이아나무를 방불케 하기도 하는데 금강소나무는 몸체가 붉다. 나무 중에서도 귀골이라고 할까,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시인은 이 나무를 조금은 색다르게 그리고 있다. 큰 눈이 내렸을 때 잎과 가지에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서 허리가 부러진 금강소나무를 그리고 있는데, 그 이유가 나무의 ‘결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기는 허리를 굽히게 하지 않고 쓰러져 눕게 한다. 

  백절불요(百折不撓)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백 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는 정신과 자세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후한시대 교현의 강직함을 칭송하여 지은 채옹의 글에서 유래되었다. 시퍼렇게 드러난 뼈의 결기가 눈밭에 나뒹굴고, 뼈를 드러낸 칼날이 눈보라를 베고 있으니, 백제의 계백장군 같다. 

  선거철이 되니까 새로운 당이 만들어지고 이합집산의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 것 같다. 정치인의 생리가 ‘헤쳐 모여’이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그들 중 다수가 기회주의자 같다. 정치철학은 고사하고 개똥철학도 없는. 금강소나무들조차도 직립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눈앞에 누울 때는 몸뚱이를 결딴내고 눕거늘, 허구한 날 그저 권력의 향배에 따라 허리를 굽실거려서야 되겠는가.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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