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5) / 지금도 깨끗한 곳 - 신승근의 ‘물의 마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5) / 지금도 깨끗한 곳 - 신승근의 ‘물의 마을’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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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5) / 지금도 깨끗한 곳 - 신승근의 ‘물의 마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5) / 지금도 깨끗한 곳 - 신승근의 ‘물의 마을’ 

  물의 마을 

  신승근 


  아름다운 물의 마을
  가수리(佳水里)에 가면
  동강의 물이 되어 흐르고 싶어진다.
  흐르다 지친 몸이
  때로 뼝대 끝에 닿는다면
  그대로 멈춰 서서 잠들고 싶어진다.
  산 끝에서 산 끝을 물고
  돌아가는 수심(水深)처럼
  우리들 생애 또한 깊어질 수 있다면,
  물밑 자갈돌처럼이나
  맑아질 수만 있다면 어찌
  더딘 물길이라고 흘러가지 않겠는가.
  수백의 폭포가 몸을 던져
  그들의 거친 생애를 동강에 맡길지라도
  산과 나무, 구름에게조차
  몸을 허락하는 강물처럼
  우리도 함께 섞여 흘러보지 않겠는가.
  물의 끝이
  그 어디인들 어떠랴.
  물 끝까지 가 닿을 수 없다 한들
  또 어떠랴.

  —『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달아실, 2018)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5) / 지금도 깨끗한 곳 - 신승근의 ‘물의 마을’ [사진 = 강원도 영월 동강의 모습]

  <해설>

  지금껏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강원도 동강 가수리.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니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국내 여행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의 검룡소를 출발한 물줄기가 임계를 거쳐 정선에 이르면 한결 부드러워지는데 그 시작이 가수리로, 여량에서 출발한 나무 실은 뗏목이 가수리에 도착하여 한숨 돌렸다고 전해진다. 동강의 지류인 지장천을 흐르는 물줄기와 기암절벽이 만들어낸 풍광이 아름답고 언덕을 개간해 농사를 짓고 사는 그림 같은 농촌 마을 풍경이 강을 따라 이어지는 곳으로 수매, 북대, 갈매, 가탄 등 자연 부락의 이름들 모두 아름다운 강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마로니에북스의 자료)

  대한민국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청정한 공간이니 영원무궁 보존되었으면 한다. 1960년대에 산업화 시대로 돌입한 이래 우리는 건설, 건축, 개발, 신설, 확장, 수출 같은 것을 미덕으로 여겨 왔다. 그 결과 자연이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경치가 좋은 곳에는 펜션이나 별장 혹은 연수원이나 위락시설이 세워져 있다. 전국 곳곳의 그린벨트가 해제되어 주택가가 되곤 하는데 몇 천 그루씩 나무가 죽을 것이다.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신승근은 오랜 교사 생활을 접고 지금은 자급자족하는 농사꾼이다. ‘뼝대’는 바위로 이루어진 높고 큰 낭떠러지로 강원 지방 사투리다. 물과 바위로 이루어진 마을에서 그는 태어났고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다. 이 시는 ‘自然’이라는 한자어의 뜻풀이 같다. 스스로 그러했는데 우리는 왜 그것을 그냥 두지 않는 것일까. 산과 나무, 구름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강물이 흘러가듯이 우리네 인생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좋으련만! “산 끝에서 산 끝을 물고/ 돌아가는 수심(水深)처럼/ 우리들 생애 또한 깊어질 수 있다면” 빨라도 그만, 더뎌도 그만인 것을. 물의 길을 가로막지 말아야 했는데…….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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