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6) / 가장 무서운 혼 - 배수연의 ‘혼이 난다는 것’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6) / 가장 무서운 혼 - 배수연의 ‘혼이 난다는 것’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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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6) / 가장 무서운 혼 - 배수연의 ‘혼이 난다는 것’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6) / 가장 무서운 혼 - 배수연의 ‘혼이 난다는 것’

  혼이 난다는 것

  배수연 


  혼이 난다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혼이 날 때 혼을 조금 빼놓고 있어 보자

  혼이 난다는 것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예의 바르게 사과한 뒤,
  앞으로 잘 하겠다 진지한 체 말한다면
  부모님도 선생님도 기특해 할 테지

  혼이 난다는 건 뭐,
  나쁜 일이 아니다
  튀기는 침 몇 방울과 벌 청소가 그렇게 힘든가?

  다만 우리 선생님이
  지그시 내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바라보며 오래도록 침묵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만 없다면

  혼이 난다는 건 대체로 할 만한 일이다

  —『동시마중』(2019년 9ㆍ10월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6) / 가장 무서운 혼 - 배수연의 ‘혼이 난다는 것’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6) / 가장 무서운 혼 - 배수연의 ‘혼이 난다는 것’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심한 꾸지람을 듣는 것을 우리는 혼난다고 표현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혼나도 기분은 별로 좋지 않다. 어떤 아이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자주 혼이 난다. 주위가 산만하거나 제멋대로 하거나 고집이 센 경우 특히 그렇다. 혼을 내는 어른은 언성을 높여 말하느라 침을 튀기기도 한다. 화장실 청소 같은 것이야 일상다반사이다. 

  이 동시의 화자는 나름대로 지혜를 터득하였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거나 앞으로 잘할 거라고 사과와 함께 반성의 뜻을 전하면 어른들은 그 말을 믿고 용서를 해준다. 그런데 이 영악한 아이가 영 께름칙한 것이 있다. 선생님의 응시와 침묵이다. 지그시 눈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이는 양심이 찔려 오금이 그만 저리게 된다. 

  즉, 이 동시의 주제는 아이들이 무엇을 잘못할 때마다 혼을 내지 말자는 것이다. 가만히 눈을 맞추고 바라보기만 해도 아이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반성을 한다. 그런데 매번 침을 튀기며 혼을 내면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매번 벌 청소를 시키면 반성은커녕 반항심을 키워주기 십상이다. 혼을 내야 할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잘 타일러보자. 눈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여보자. ‘잘 할 수 있지?’ ‘앞으로 안 그럴 거지?’란 말을 눈에 담고서.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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