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7) / 초병에게 건네는 말 - 이명의 ‘초병에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7) / 초병에게 건네는 말 - 이명의 ‘초병에게’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0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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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7) / 초병에게 건네는 말 - 이명의 ‘초병에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7) / 초병에게 건네는 말 - 이명의 ‘초병에게’

  초병에게

  이명 


  고통 없이 자라는 나무가 어디 있겠느냐
  인내해야 한다는 것은 힘든 일 
  삶이란 슬픔의 연속이라서 바다도 멍들어 검고 
  하늘도 푸른 것이다 
  외롭지 않은 나무가 어디 있겠느냐
  지켜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
  햇살도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아랫목에 자리 잡고 
  바람이 문풍지를 흔드는 것이다
  날이 계속 맑으면 땅은 사막이 된다는데
  좋은 날만 있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느냐 청춘아 
  인내를 배우기 위해 
  나무도 이 무더위에 푸른 옷을 겹겹이 걸치고 
  혹한에는 옷을 벗는 것이다 
  저 굴곡의 벌판에 
  홀로 말없이 서 있는 것이다
  어떤 구차함도 필요 없는 것이다

  -『시터』제4집에서(현대시학사, 2019)

사진 = 한송희 기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7) / 초병에게 건네는 말 - 이명의 ‘초병에게’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학교에 있다 보니 휴가 나온 제자를 수시로 만난다. 반갑게 악수를 청하고 어깨를 두드려 준다. 어디서 복무하고 있는지 묻고 점심을 먹었는지 묻기도 한다. 제대는 언제쯤 할 건지 복학은 어느 시점에 할 건지 묻기도 한다. 대체로 군대에 가기 전에 지각과 결석을 자주 해 내 속을 썩이던 녀석들이다. 학점을 안 좋게 준 선생인 나와 녀석의 사이엔 눈에 안 보이는 앙금이 있어서 대화가 좀 어색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F학점을 주었을 경우, 그는 나를 훗날 다시 만날 수도 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것을 서로 알고 있기에 건조한 대화를 서먹서먹하게 나누는 것이다. 그래도 몸 건강하게 무사히 제대하고 오기를 바란다고 말해주면 녀석은 씩씩하게 대답한다. 네, 교수님!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찾아뵙기는 무슨, 첫 시간에 제일 앞에 앉아 있다. 녀석은 결석은커녕 지각도 하지 않는다. 어느새 스스로 앞길을 헤쳐 나가는 성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초병에게 용기를 주는 아주 쉬운 내용이다. 해설을 달리 붙일 것이 없다. 군대 생활에서 가장 고달픈 것이 경계근무를 서는 일일 것이다. 자리를 무단이탈해도 안 되고 졸아도 안 된다. 한여름에도 혹한에도, “저 굴곡의 벌판에 홀로 말없이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굴곡의 벌판은 휴전선 155마일이다. 무거운 철모를 쓰고 개인화기를 들고 1시간만 서 있어도 다리가 아픈데 부대 사정에 따라 일고여덟 시간씩 서 있기도 한다. 승선한 해군 견시병은 총 대신 망원경을 들고 4시간씩 하루 두 차례 근무를 서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인은 이 땅의 초병들에게 말해준다. 거기서 인내를 배우라고. 그렇다. 군대가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큰 것이 인내심일 것이다. 사람은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외로움에 시달려 보기도 해야 한다.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뚝성을 냈다가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지금 전방고지에는 눈발이 날릴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들의 잠자리를 지켜주는 모든 초병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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