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9) / 가족해체 현상 - 이정현의 ‘시계도 사람이 그립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9) / 가족해체 현상 - 이정현의 ‘시계도 사람이 그립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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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9) / 가족해체 현상 - 이정현의 ‘시계도 사람이 그립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9) / 가족해체 현상 - 이정현의 ‘시계도 사람이 그립다’

  시계도 사람이 그립다

  이정현

 
  수십 년
  화장실 벽이 삶터였다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살았다

  들며 나는 사람들
  안녕! 하듯 눈인사도 받고 
  시원하게 물 내리던 소리도 들으며
  그다지 심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베란다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떠가는 구름만 바라보며
  하늘바라기하는 신세
  집안도 빈 둥지처럼 조용하니
  내 마음도 쓸쓸하기만 하다

  거실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가족이라면서 밥도 함께 먹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람들

  웃음꽃 피우며 퉁탕거리던
  띠앗형제들 어디로 갔을까
  시계도 사람이 그립다

  —『각설탕이 녹는 시간』(지성의 샘,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69) / 가족해체 현상 - 이정현의 ‘시계도 사람이 그립다’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시계를 의인화한 이 시를 쓴 이정현 시인은 연세가 여든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화장실 벽에 걸려 있던 낡은 벽시계는 ‘아들 손자 며느리’가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시절의 일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예전에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족이었다. 지금은 집에서도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다니고 밥도 같이 안 먹는다. 가족해체는 아마도 대한민국 많은 집들의 공통적인 현상일 것이다. 세대차가 너무 나서 소통이 도무지 안 된다. 자식과 부모가 전혀 소통이 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는 소재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수십 년 동안 화장실 벽에 걸려 있다가 베란다 한구석에 있게 된 벽시계의 처지는 사실 시적 화자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아들과도 손자와도 대화가 없이 살아가는 주변 노인네들의 경우를 보고 이 시를 쓸 마음을 먹었을 텐데 기계화와 문명화는 인간을 고립시키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독신자, 독거노인, 미혼, 이혼, 혼밥, 혼술……. 우리 사회에 지금 얼마나 냉기류가 흐르고 있나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시인은 주장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과 고령화가 심화되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될 문제가 가족해체다. 한 지붕 아래 살지만 가족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성원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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