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2) / 옹골진 수박 씨앗 – 황외순의 ‘수박을 읽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2) / 옹골진 수박 씨앗 – 황외순의 ‘수박을 읽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11 1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2) / 옹골진 수박 씨앗 – 황외순의 ‘수박을 읽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2) / 옹골진 수박 씨앗 – 황외순의 ‘수박을 읽다’

  수박을 읽다  

  황외순 


  진열대 언저리로 내몰린 수박 한 통
  반쯤 시든 꼭지 보며 선뜻 손이 안 가는데
  번번이 면접에 실패한
  조카 녀석 떠오른다

  외모보단 실력이지 등 토닥여 주지만
  입가에 검은 모반(母班) 취업 문 못 열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
  블라인드 채용이라

  여민 속 가만 풀자 왈칵 쏟는 붉은 속내
  벼린 칼날 물고 있는 씨앗 하나 옹골지다
  간신히 잡은 그 기회
  놓칠 수는 없다는 듯

  -『단편같이 얇은 나는』(고요아침,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2) / 옹골진 수박 씨앗 – 황외순의 ‘수박을 읽다’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대졸자의 취업문이 참 좁다. 면접을 열 번 이상 보는 것은 다반사다. 입가에 검은 모반이 있는 것이 걸림돌이 되어 번번이 면접에서 미끄러진 조카가 있는 모양인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다행히 얼굴은 안 보여주는 채로 면접을 하게 되었다. 이를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한다. 조카는 비록 반쯤 시든 꼭지를 갖고 있는 수박 같지만 “농익은 붉은 속내”와 “별린 칼날 물고 있는 씨앗 하나 옹골”지다고 면접관에게 제대로 좀 보라고 충고를 하고 싶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 있으니 ‘용모 단정’이 ‘실력 출중’에 앞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이 고3 여름방학 때 단체로 얼굴 성형수술을 받아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내가 기업체에 입사하자 여직원들이 여름휴가 때 단체로 눈 쌍꺼풀 수술을 하기도 했다. 90년대 초의 일이긴 했지만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다면 고쳐야 할 일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