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4) / 박정희 예찬론자, 잠들다 – 신원철의 ‘한잠’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4) / 박정희 예찬론자, 잠들다 – 신원철의 ‘한잠’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1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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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4) / 박정희 예찬론자, 잠들다 – 신원철의 ‘한잠’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4) / 박정희 예찬론자, 잠들다 – 신원철의 ‘한잠’ 

  한잠

  신원철


  저녁이면 막걸리와 소주 둘로 나뉜다
  젊은 측은
  소주가 좋지만
  유일하게 막걸리를 고집하는 이 노인
  박정희 예찬론자다
  그분이 막걸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아 막걸리 드실 때는
  정말 괜찮았는데
  나중에 씨바스로 바꿨다가 돌아가셨지
  차지철 그놈 땜에 그리 됐다구
  여러분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좀 더 노력해야 해
  이렇게 평생 살 순 없잖아?
  젊은이들 실실 웃는데
  일장연설
  잠잠하다 했더니
  어느새 고개 떨어뜨리고 코고는 소리.

  -『동양하숙』(서정시학,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4) / 박정희 예찬론자, 잠들다 – 신원철의 ‘한잠’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호ㆍ불호가 확실히 갈린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했던 대통령이라면서 지금도 칭송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독재를 하기 위해 민주와 자유를 탄압했던 독재자로만 평가하는 이도 있다. 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공’과 ‘과’가 함께 논의되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승만 대통령도 과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도 공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말로는 대체로 비참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후에 하와이로 망명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하였다. 전두환ㆍ노태우ㆍ이명박ㆍ박근혜 대통령은 구속ㆍ수감되는 경험을 했었고(누구는 지금도 교도소에 있다), 김영삼ㆍ김대중 대통령은 아들이 구속ㆍ수감된 바 있었다. 나라가 어찌 이런가!

  이 시에 등장하는 노인은 박정희 대통령 예찬론자다. 막걸리를 좋아한 박정희를 두둔하는데,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시바스 리갈이라는 양주를 마시면서 사람이 바뀌었다고. 노인은 막걸리를 ‘서민의식’으로, 양주를 ‘선민의식’으로 본 듯하다. 그런데 암살의 이유가 박정희의 잘못에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보좌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1960, 7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런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 1950년대의 절대빈곤을 알기 때문에 경제개발을 위해 노력했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혀 ‘일장연설’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견해를 젊은이들 앞에서 밝히면 비웃음을 사게 마련이다.

  배고픔을 면한 것은 좋지만 수갑을 찬 채 밥을 먹는 것은 지금의 젊은이들은 바라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노인의 말에 실실 웃을 뿐 대응을 안 해 주니 노인은 술집 한구석에서 그만 한잠 잔다. 1960년대에 20대였다면 2020년대에는 80대다. 이제는 ‘재건복’과 ‘가발공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시대가 되었다. 과거를 마냥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함을 잠든 이 노인이 침묵의 언어로 말해주고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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