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5) / 이산가족의 이별 – 황송문의 ‘창변의 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5) / 이산가족의 이별 – 황송문의 ‘창변의 손’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14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5) / 이산가족의 이별 – 황송문의 ‘창변의 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5) / 이산가족의 이별 – 황송문의 ‘창변의 손’

  창변의 손
  -남북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에

  황송문 


  하나의 손바닥을 향하여
  또 하나의 손바닥이 기어오른다.
  차창 안의 손바닥을 향하여 
  차창 밖의 손바닥이 기어오른다.
  줄리엣의 손을 향하여
  로미오의 손이 담벼락을 기어오르듯
  기어오르는 손바닥 사이에 차창이 막혀 있다.

  유리창은 투명하지만,
  매정스럽게 차가웠다.
  차창 안의 손은 냉가슴 앓는 아들의 손
  차창 밖의 손은 평생을 하루같이 산 어미의 손
  신혼에 헤어졌던 남편과 아내의 손
  손과 손이 붙들어보려고 자맥질을 한다.

  손은,
  오랜 풍상을 견디어내느라 주름진 손은
  혹한을 견디어낸 소나무 껍질 같은
  수없는 연륜의 손금이 어지럽다.
  암사지도(暗射地圖)보다도 잔인한
  상처투성이 손이 꿈결처럼 기어오른다.

  얼굴을 만지려고, 세월을 만지려고
  눈물을 만지려고, 회한을 만지려고
  목숨 질긴 칡넝쿨처럼 기어오르면서
  왜 이제야 왔느냐고,
  왜 늙어버린 뒤에 왔느냐고,
  유복자 어깨를 타고 앉아 오열을 한다.

  -『망명북한작가 PEN문학』(2019년 제5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5) / 이산가족의 이별 – 황송문의 ‘창변의 손’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남북한 관계가 한겨울 화천처럼 깡깡 얼어붙어 있는데 해빙이 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남한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국과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언급했지만 북한의 김정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남쪽의 이산가족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북녘 하늘을 보며 눈물짓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쪽의 이산가족은 남녘 하늘을 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제2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2018년 8월에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있었다. 대체로 전쟁 중인 1950년에서 52년 사이에 헤어져 2018년에 만났으니 66~68년 만의 만남이다. 그때 스무 살이었으면 지금 거의 90세다. 이제는 장수한 사람들만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보고 죽으려고 숨도 못 거두고 있는 분들의 만남이다. 부모가 자식과 만나기도 한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둘째 날인 21일에 외금강호텔에서 2시간 동안 개별상봉을 한 뒤 객실에서 1시간 동안 가족끼리 점심식사를 가졌다. 남북의 이산가족이 숙소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개별상봉을 마친 뒤 오후 3시부터는 금강산호텔에서 진행하는 단체상봉 행사에 참여하였다. 상봉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공동 점심식사 시간이 마련되어 단체식사를 했다. 이 일정이 끝나 남쪽 이산가족들이 다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바로 그 장면을 황송문 시인이 그리고 있다. 

  긴 이별도 비극이요 짧은 만남도 비극이요 이후의 영영 이별도 비극이지만 우리는 왜 서신왕래도 안 되는 것일까. 화상 상봉도 2007년이 끝이었다. 부자간, 모자간, 부부간, 형제간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이 냉전이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까.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는 손, “목숨 질긴 칡넝쿨처럼 기어오르는” 손을 뒤로 하고 버스는 매정하게 달려간다. 남북은 다시 등을 돌리고. 유복자도 울고 엄마도 운다. 뽈뽈 기어 다니던 유복자가 어느새 늙었고 엄마는 이제 저승 문 앞에 다다라 있다. 누구의 가슴을 향해 미사일을 쏘고 있는 것인가, 그대는.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