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6) / 바다에서 마친 생애 – 윤이산의 ‘그 바다에 다시, 서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6) / 바다에서 마친 생애 – 윤이산의 ‘그 바다에 다시, 서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15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6) / 바다에서 마친 생애 – 윤이산의 ‘그 바다에 다시, 서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6) / 바다에서 마친 생애 – 윤이산의 ‘그 바다에 다시, 서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6) / 바다에서 마친 생애 – 윤이산의 ‘그 바다에 다시, 서다’

  그 바다에 다시, 서다

  윤이산 


  아버지가 고등어를 들고 오시는 날엔
  통째로 걷어온 바다로 온 집안이 출렁거렸다

  어딘가 닿기 위해 온 바다를 휘젓고 다녔을 고등어
  불판 위에서도 해류를 거슬러 가는지
  몸 뒤집는 소리가 거셌다

  ―쪼매마 더 기다리거래이
  부레처럼 부푼 어머니 음성이 살짝 밖으로 튀었고
  거센 파랑을 잠재울 때까지
  우리는 침 삼키는 일조차 끈질기게 얌전했다
  앉은뱅이책상 다리 같았다

  물결을 떼어내 오래오래 씹으며
  동생은 GPS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그물과 미끼를 구상했다
  언젠가는 바다를 통째로 삼켜버리리라, 다짐한 것도 같다

  ―이 양반 고등어 잡으러 어디까지 가신 기고?
  아버지를 잃고 점점 그물 되시는 어머니
  입매에 날물 때가 지나고 있었다

  그물을 들고
  등 푸른 바다를 찾아나서는 늦은 오후
  누군가가 이미 가두리해둔 바다에서
  수평선이 점점 목을 조여 왔다

  그물을 버리고
  왈칵, 온 바다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실천문학』(2019년 겨울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6) / 바다에서 마친 생애 – 윤이산의 ‘그 바다에 다시, 서다’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어부인 아버지는 고등어를 주로 잡아 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는 고등어를 갖고 오지 않게 되었다. 바다가 꿀꺽 삼켜버린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뒤 어머니는 넋이 나간 것일까 점점 그물이 되었다. “입매에 날물 때가 지나고 있었다”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날물은 나가는 물, 곧 썰물이다. 우리가 먹는 모든 곡식과 과일이 농부가 생산한 것이듯 생선 또한 어부가 그물로 건져 올린 것이다. 노동의 산물인 것이다. 

  아버지 세대는 눈만 뜨면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질 줄밖에 몰랐다. 아들 세대는 GPS(위성항법 시스템,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공위성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시스템)도 다룰 줄 안다. 그럼 조난을 당했을 때도 쉽게 구조를 받을 수 있다.

  바다가 집이었고 직장이었고 길이었던 아버지들이 있었다. 이 나라의 어업을 책임졌던 아버지 세대의 힘겨웠던 삶을 다룬 시이기에 이 시는 한 가족의 가족사를 넘어 많은 서민의 애환이 담긴 민중사라고 할 수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