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8) / 옥에서 확인한 부부애 – 김시환의 ‘면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8) / 옥에서 확인한 부부애 – 김시환의 ‘면회’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17 07:00
  • 댓글 0
  • 조회수 8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7) / 옥에서 확인한 부부애 – 김시환의 ‘면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7) / 옥에서 확인한 부부애 – 김시환의 ‘면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8) / 옥에서 확인한 부부애 – 김시환의 ‘면회’

  면회

  김시환 


  첫눈이 펄펄 내리는 오늘도
  팔순이 다 된 아내가 면회를 왔다.
  아내가 꽁꽁 언 손바닥을 면회실 유리벽에 대면,
  나도 따라 찬 유리벽에 손바닥을 맞댄다.
  가슴이 뛰고 아프다.

  “나는 잘 때가 제일 좋아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내가 영어의 몸이 되어 고달프게 살아보니
  나도 이제 잘 때가 제일 좋아요.
  고생한 당신을 그때는 몰라줘서 미안해요.

  이제는 돌아가면 내가 무엇이든 하리다.
  다짐하며 세탁도 배우고 옷도 접고
  요리도 배우고 모든 정성을 당신께 바치렵니다.
  새해에는 동갑내기 일흔여덟이 됐네요.
  업어주고 안아주고 활짝 같이 웃고 싶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걱정해주고 웃어주는
  당신 오는 날 손꼽아 기다리며 산다오.
  2년을 꼬박 다닌 당신 덕에 나는 버티었다오.
  여보, 사랑해요.
  나도 찬 유리벽에 손바닥을 맞댄다. 

  -『새길』(2019년 봄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77) / 옥에서 확인한 부부애 – 김시환의 ‘면회’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수용자 종합문예지 『새길』에 실려 있는 시다. 많은 투고작 중에서 뽑혔다. 약간의 원고료도 지급되었을 것이다. 시를 써 받은 원고료이기에 얼마나 감격했을까. 교도소 내에서 『새길』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문예지인데 바깥세상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비매품이다.

  일흔여덟 할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어 교도소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교도관은 내게 수시로 주지시켰다. 무슨 죄목으로 형을 살고 있는지 묻지 마십시오. 여기 오기 전에 뭐하며 살아갔는지 물어보시면 안 됩니다. 춘천교도소의 예의바른 할아버지에게 나도 모르게 질문을 하고 말았다. “전에 뭐하셨는지요?” 불문율을 깼기에 당황해하고 있는데 칠순 노인은 잔잔한 미소를 띠며 대단했다. “강원도에 있는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퇴직금을 받자 그만 친구가……” 돈도 날리고 친구와도 헤어지고. 빚만 지고. 경제사범이 되어 수의를 입고 살아가게 되었다. 

  이 시의 작자는 아내의 사랑과 희생을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아내가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게 된 밤 시간, “나는 잘 때가 제일 좋아요.”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던 모양이다. 아내가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여기에 와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찬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어 손도 보듬어볼 수 없다. 할아버지가 형기를 마쳐 할머니가 면회 오는 고생만이라도 안 하고 사셨으면 좋겠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