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2) / 어색한 조문 – 김종경의 ‘안개의 부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2) / 어색한 조문 – 김종경의 ‘안개의 부음’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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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2) / 어색한 조문 – 김종경의 ‘안개의 부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2) / 어색한 조문 – 김종경의 ‘안개의 부음’

  안개의 부음 

  김종경


  안개주의보를 뚫고
  도시의 경계를 몇 개쯤 지났을까

  장례식장 가는 길목엔 방향 잃은 점멸등과 이정표들이
  젖은 몸을 일으켜 일찌감치 귀가를 서둘렀고,
  환경미화원들은 낙엽처럼 쌓여 가던 창백한 밤안개를 
  쓸다 말고 넋을 잃었다

  머뭇거리다 혼자 떠난 문상길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뒤섞인 이름들을 떠올려보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낯선 눈빛들,
  지친 조화들만 이름표를 매단 채 졸고 있고
  낡은 구두 몇 켤레만 흩어져
  술 취한 추억들에게 붙잡혀 있다

  얼굴도 모르는 상주에게 문상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으로 쓴 조의금 봉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돌아섰다

  앰뷸런스는 또 다른 부음을 찾아
  안개주의보 속으로 달려가고

  -『기우뚱, 날다』 (실천문학사, 2017)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2) / 어색한 조문 – 김종경의 ‘안개의 부음’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이번 달에는 경조사비를 참 많이 썼구나, 생각하는 월말이 있다. 이상하게도 겨울로 막 접어들거나 꽃샘추위가 심할 때는 부음을 더 많이 접한다. 연세가 높은 분들은 기후 변화에 약한가 보다. 

  이 시의 화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잘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장에 찾아갔다.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 자리가 머쓱하고 어색하다. 모든 것이 안개에 휩싸여 있다. 얼굴도 모르는 상주에게 문상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으로 쓴 조의금 봉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내밀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므로 어색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는다.

  상갓집에 가서 영정의 사진을 보면 내 일가가 아닌 한 대체로 모르는 사람이다. 지인의 아버지나 어머니와 각별한 사이가 아니라면 우리는 슬픈 감정 없이 조문하고 물러나온다. 바로 그래서 시인은 이런 부음을 ‘안개의 부음’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화자의 아버지가 알던 사람이니 사돈의 팔촌보다 먼 사람이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챙겼어야 할 분이라고 아들이 장례식장에 가는 우리 식의 체면치레다. 앞으로는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장례문화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안개주의보 속에 달려가는 앰뷸런스가 다음 세대에는 사라질 거라고 본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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