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3) / 고인 시간을 견디는 법 – 최승아의 ‘늪’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3) / 고인 시간을 견디는 법 – 최승아의 ‘늪’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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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3) / 고인 시간을 견디는 법 – 최승아의 ‘늪’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3) / 고인 시간을 견디는 법 – 최승아의 ‘늪’

  늪

  최승아


  형무소 앞 냉골 방에
  노모가 산다

  간절한 기도는 화석이 되어가고
  노모는 속울음을 울고 있다
  울음이 얼마나 더 깊어야
  바닥에 닿을 수 있나

  멈춘 시간이 바닥에 고이면
  가시연처럼 혼자서도
  꽃을 피우는지

  겨울 늪에 닿으려면 발자국마다
  숨을 죽여야 한다

  떠난 새들이 끼룩끼룩 모여드는 저녁
  젖이 퉁퉁 불은 늪은
  너른 품을 열어두고 있다

  무엇이든 품고 싶은 겨울밤
  어린 새들이 성호를 긋고 지나간다

  속죄하듯 
  일억 오천만 년 가슴을 졸인
  노모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오프너』 (한국문연,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3) / 고인 시간을 견디는 법 – 최승아의 ‘늪’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아들 면회하러 가기가 너무 멀고 힘들어 자취방을 구해 지내는 어머니들이 있다. 아버지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어머니의 일상 중 가장 중요한 일이 기도하는 일이다. 자식이 무사히 형기를 마치기를. 자식이 피해를 준 사람이 잘살기를. 저승에서도. 

  제4연에서 늪은 얼어 있는 겨울 늪이다. 시간도 얼어 있고 마음도 얼어 있다. 제5연에서 늪은 “젖이 퉁퉁 불은 늪”이다. 어머니 자신의 가슴이다. 자식이 중죄인이 되어 장기(長期) 수감자가 되면 그의 어머니는 자식과 함께 형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간도 늪이 되고 본인의 가슴도 늪이 된다. 그것도 깡깡 언 한겨울의 늪이다. 죄를 지은 것은 아들이건만 어머니는 스스로를 책망한다. 그리고 그녀가 기다린 시간은 일억 오천만 년이다. 과장법이 아니다. 무한한 시간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출산해 젖을 먹일 때, 목욕을 시킬 때, 들쳐업고 병원에 갔을 때, 학교에 입학시켰을 때의 일들을 기억한다. 아들이 애인이기도 하기에 곁을 떠날 수 없다. 출감하는 날까지 근처에서 같이 옥살이하는 어머니에 얽힌 사연이 시가 되었다. 독자를 슬픔의 늪에 빠뜨리는 사연이.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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