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4) / 짧은 시, 긴 여운 – 이은봉의 ‘조촐한 가족’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4) / 짧은 시, 긴 여운 – 이은봉의 ‘조촐한 가족’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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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4) / 짧은 시, 긴 여운 – 이은봉의 ‘조촐한 가족’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4) / 짧은 시, 긴 여운 – 이은봉의 ‘조촐한 가족’

  조촐한 가족

  이은봉


  멀리 풍장 치는 소리 들린다
  팔월도 한가위
  산마을 아득한 골짜기 저쪽

  색동옷 곱게 차려입은 
  어린아이 둘……

  젊은 엄마를 따라
  묏등 앞 오가며 상을 차린다

  조촐한 가족, 두 번 절하고
  음식 나누는 동안
  산까치, 참나무 끝에 날아와 운다

  -『생활』 (실천문학사,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4) / 짧은 시, 긴 여운 – 이은봉의 ‘조촐한 가족’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음력 8월 15일이 중추가절, 한가위다. 2019년의 경우 양력 9월 13일이 추석이었다. 아직 꽤 더울 때이다. 한가위라고 어디 멀리서 축제가 벌어진 모양이다. 풍장 치는 소리(농악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깊은 산골 어느 묏등 앞에서는 젊은 엄마를 따라온 두 아이가 엄마를 거들며 상을 차리고 있다. 제사상이다. 남편이 무슨 일로 일찍 세상을 뜬 모양인데 그 이유는 시에 나와 있지 않다. 

  조촐한 가족이다. 세 식구 두 번 절하고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을 나누어 먹는 동안 산까치가 참나무 끝에 날아와서 까악까악 운다. 색동옷 곱게 차려입은 두 아이는 이 기막힌 상황을 인지하지도 못한다. 남편을 잃은 아내는 두 아이를 키울 일이 꿈만 같다. 

  이은봉 시인은 처절하게 비극적인 이 장면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만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화룡점정, 한 줄을 첨가한다. “산까치, 참나무 끝에 날아와 운다”고. 진술하다가 묘사를 하였고, 산문을 쓰다가 운문을 썼고, 이야기를 하다가 시를 썼다. 35년 동안 시를 써 온 이은봉 시인, 시는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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