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과 책은 실과 바늘 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지난 2014년부터 강화된 개정 도서정가제는 그런 대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제 우리는 거금을 줘야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고, 이는 혹자에겐 독서와 쌓은 담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아무도 글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대학생들의 고충을 살펴보자.
대학생 소비자에게 부담의 가중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권당 2~3만 원을 웃도는 대학 교재는 대학생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되었다. 2014년 이전엔 신학기에 맞추어 ‘대학교재 할인전’과 같은 온·오프라인 서점의 이벤트가 있었지만,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문화다. 교잿값 부담을 이기지 못한 학생들은 점점 새 책을 구입하는 것보다 무단복사와 중고 거래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작년 3월, 지방의 한 국립대에 재학 중인 새내기 A 씨는 전공 책을 사고자 같은 학과 선배에게 구입처를 물었고, “후문에 복삿집 가면 복사해 주셔.”라는 대답을 들었다. 윤리의식을 따지기 이전에 범법행위였지만, 정가 22,000원의 책을 단돈 5,000원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유혹이었다.
경제 사정이 풍족하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무단복사는 공공연히 행해지는 그들만의 ‘할인’이다. 중고 책방에서도 평균적으로 정가의 30%에서 5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구할 수 있다.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2년 후인 2016년에 문을 연 ‘에브리타임 책방’은 이젠 대학생들에게 필수적인 거래의 장이 되었다.
이렇듯 늘어나는 무단복사와 중고 거래가 과연 도서정가제의 취지인 ‘영세 서점과 출판사의 권익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무단복사와 중고 책 장터의 확산은 저작물의 수요는 충족 시켜 주는 데 반해 새 책의 구입은 없다. 공급자인 작가와 출판사는 이렇다 할 이익도 없이 소비자를 빼앗기는 것이다. 지난 학기 교잿값으로만 15만 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밝힌 대학 재학생 B 씨는 ‘책은 소비재 상품이 아니기에 타 재화들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은 책값이 부족해 책을 못 사 본 경험이 없는 자의 것’이라는 말과 함께, ‘검증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장인 책 산업의 위축은 정보 격차와 우민화로 이어질 뿐’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도서정가제를 비판했다.
글을 쓰고 싶은 대학생들에게는 불안감
다양한 매체가 발달하며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2030 청년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나만의 책을 집필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 책을 출판하는 대학생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전반적인 출판 산업이 정체되며, 애초에 저조했던 국내 청년 작가의 발굴은 악화 일로에 있다.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대학생 C 씨는 도서정가제에 대해 ‘모든 책을 태워야만 하는 세계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 ‘화씨 451’이 떠오른다‘고 하며, ’도서정가제는 책을 태우진 않지만, 책의 잿더미와 팔리지 않는 책은 다를 게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가격 할인으로 도서 재고를 관리할 수 없게 되어 애물단지가 된 재고는 출판사 차원에서 파쇄하게 된다. 도서정가제가 저작권자의 인세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 지금, 작가를 꿈꾸고 있는 사람으로 걱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출판 번역가나 출판사 편집자·기획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언어를 전공하는 D 씨는 ’교수님조차 굶어 죽지 않으려면 다른 직업을 택해야 한다고 하셨다‘ 라며 번역가라는 꿈을 접어둘 수밖에 없었던 경위를 말했다. 앞으로의 출판계는 지금의 학생들이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독서가 좋고 글 쓰는 게 좋은 문학 청년들은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 살며 출판 산업의 미래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본인들이 책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해당 직업군을 기피하게 된다면, 도서정가제로 발발된 악순환의 골은 더욱더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