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프랑스도 하고 독일도 하고 있으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마치 대부분의 국가가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사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세계 224개국 중에 15개 국가이고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그 중 8개국에 불과하다. 더구나 구간행물에 대해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라는 사실, 정가제를 적용하는 물건은 책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도서정가제를 바라 보아야 한다.
우선 세가지 방식으로 현재 도서정가제가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먼저, (완전)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근거로 드는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들을 간단히 살펴 보고, 다음으로 도서정가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박양우 장관의 발언과 백원근 책과 사회연구소 대표의 글을 통해서 살펴 본다. 마지막으로 2014년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의 현실화된 결과에 근거해서 정책을 평가하고 제기되는 쟁점에 대해 정리하겠다. 무엇보다 도서정가제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계약자유의 원칙에 중대한 예외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과하면 제도 자체의 존립이 헌법의 기본가치를 침해하게 될 위험이 있다.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국 균일가(일물일가의 원칙)를 주장하면서 마치 물건들이 판매점 마다 다른 가격으로 팔리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인 양 주장한다. 일물일가의 원칙은 완전 경쟁시장에서 모든 제품의 가격이 하나의 가격으로 수렴한다는 이론인데 독점가격인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면서 근거로서 일물일가의 원칙을 언급하는 것은 어색하고 제도를 이해하지 못한 소산이다. 여기에 더해서 커피 등 특정 소매 프랜차이즈가 특정 물품을 프랜차이즈 마다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완전 도서정가제를 해야하는 근거로 든다. 역시 도서정가제가 무엇인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도서정가제는 소매점의 가격결정권을 생산자가 통제하는 것이고 위 사례는 소매점이 자신의 정책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는 사례다. 커피생산자인 농민이 전국 프랜차이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과 도서정가제와 비교해야 한다
도서정가제를 하지 않으면 출판사들이 할인을 전제로 높은 도서가격을 정하고 이를 할인을 해서 팔게 되는 조삼모사로 소비자를 속이게 된다고 주장한다. 주장하는 사실이 일어 날 개연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주장이 도서정가제 주장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주장에 따르면 정가제를 채택하지 않는 모든 제품이 문제가 된다는 일반화한 것인데, 이를 도서정가제의 근거로 삼는 것은 소비자 가격을 정가로 하는 것은 오직 도서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무리한 주장이다.
도서정가제, 일반적으로 재판매가격유지제도에 대해 박양우 장관은 ‘생산자인 출판사가 정한 가격을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표시하고 그 정가대로 판매하는 제도’라고 말한다.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대해서 소비자에게 다양한 양서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들의 할인으로부터 소규모 서점과 출판사를 보호하는 제도로 이해한다. 백원근 대표는 크고 작은 다양한 출판사에서 다양한 저자의 책을 펴내고, 고래와 새우가 함께 숨쉬는 바다처럼 큰 서점, 작은 서점들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어서 종국적으로 독자의 책 구매 접근성과 책 선택의 다양성을 높이는데 기여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은 일응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분들이 책은 일반제품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20년을 넘게 주장한 내용이다. 그러면 도서정가제 20년 그 결과는 어떤가. 사실 현행 도서정가제를 시행한 5년만 두고 본다면 현실에서는 도서정가제 취지와 반대현상만 일어 났다.
도서정가제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서정가제, 도서 재판매가격유지제도(Resale Price Maintenance)는 저작 생산품인 책의 가격결정권을 생산자에게 주겠다는 것으로서 헌법적 가치인 계약자유의 원리를 유보하는 예외적인 제도이다. 계약당사자인 서점과 소비자간의 게약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로서 지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당연히 저작 생산품인 책을 생산하는 자(저작권자 등)를 위하여 판매자인 서점과 소비자의 자유를 제한하고 궁극적으로는 경쟁을 제한하는 일종의 통제가격을 정하여 소비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국가들은 채택하지 않고 있으며 채택한 국가들도 예외없이 출간한지 일정기간이 지난 구간행물에 대해서는 소비자 뿐만 아니라 출판사를 위해서도 도서정가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4년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저작권자, 출판사, 소비자, 중소서점 등 모두를 위한 제도라고 정의하고 도서정가제를 구간행물에도 도입하였다. 내용적으로만 본다면 세계에 존재하는 도서정가제도 중에서 가장 완전한 도서정가제라고 평가할만 하다. 단순히 10%의 할인을 두었다는 것만으로 독일이나 프랑스 보다 불완전한 도서정가제인 것처럼 주장하고 현행 도서정가제로 인한 결과를 떠넘기는 듯한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
도서정가제가 지역서점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제도 자체의 취지나 목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도서정가제를 잘못 이해하였거나 지역서점을 등에 업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불과하다. 서점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일부 대형 서점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제도 자체의 취지가 아니므로 이를 마치 도서정가제의 효과인 양 주장하는 것은 법제도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라고 할 수 있다. 지역서점을 보호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소비자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도서정가제가 아니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직접 이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지역서점의 문제는 지난 20년간 도서정가제에만 기대어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드는데 소홀한 후과도 일정하게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립서점의 노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와 취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박양우 장관의 발표에서 보듯이 도서정가제 취지에는 다수 국민이 동의하나 실제 도서정가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77.5%나 되는 분열적인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도서 생태계에는 도서정가제로 치유해야 할 일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일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증세에 따라 처방이 다르듯이 지역서점에 대한 것은 도서정가제가 일정 정도는 도움은 되더라도 제도 자체가 영향을 미치는데는 한계가 있고, 도서정가제 자체가 새로운 서점, 혁신하고자 하는 서점에는 오히려 진입이나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도서정가제를 더 이상 지역서점을 위한 제도로 활용하는 것은 중단해야 한다.
더구나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준비모임(완반모, 대표 배재광)이 지난 5년간 현행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의하여 도서 소비자, 창작자, 출판사, 중소형 서점 등 도서생태계가 본래 취지와는 달리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이를 통하여 2014년 현행 도서정가제 개정을 주도했고 현재 완전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허구임이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몇가지 결과에 대한 해석은 달리 말하는 분들이 있어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완전 도서정가제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책값이 인상추세이지만 전체 소비자 물가인상률보다 낮다는 근거를 들어서 도서정가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가구당 도서지출이 44% 감소한 점, 단행본 매출이 17% 감소한 점을 고려하지 아니한 평면적인 비교이다. 일반적으로 수요가 줄어 드는데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은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도서정가제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현행 도서정가제로 인하여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종이책으로 등단한 신인작가가 없다는 사실은 도서정가제의 원래 취지가 일반 상품과 다른 책의 특수성을 인정해서 저작권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라는 일각의 주장이 얼마나 자가당착 주장인지를 확인해 준다. 결코 현행 도서정가제로서는 치유 될 수 없는 제도라는 것을 인정하고도 넉넉히 남는다. 같은 이유로 현행 도서정가제의 구간행물 적용으로 인하여 중소 출판사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당시 책을 이야기 하고 문화를 이야기 하면서 개정안을 밀어 부친 사람들에게 과연 이런 참담한 결과와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묻고 싶다. 현재 완전 도서정가제를 주장하거나 현행 도서정가제의 강화나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에 완반모는 생태계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완전 도서정가제를 찬성하는 측과 다음 쟁점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할 것을 재차 주장한다. 일반적인 얘기가 아니라 정확하게 쟁점을 중심으로 토론을 해야 결론이 나고 필요한 쟁점은 다시 정리해 가면 2020 도서정가제 문제를 어느때보다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쟁점1. 현행 도서정가제 5년에 대한 평가, 도서소비자 측면(양서 접근권, 가격 접근성 등 기회확대 여부), (신인)작가 창작 의욕 및 활동이 고취되었는지 여부, 중소 출판사의 경영개선 및 출판 활성화 여부, 기존 지역서점의 경쟁력 제고되었는가
쟁점2. 도서정가제는 누구를 위한 법제도인가? (도서소비자, 출판사, 지역서점, 작가 등)
쟁점3. (완전) 도서정가제에 의하여 독서 인구가 늘어나는 등 시장이 확대되고 신인작가의 작품활동이 활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쟁점4. (완전) 도서정가제로 인하여 지역서점이 회생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근거는?
쟁점5. 종이책과 전자책(eBook)을 동일한 잣대로 규제하는 것이 타당한지와 새로운 웹콘텐츠(웹툰 혹은 웹소설 등)에도 도서정가제 혹은 완전 도서정가제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쟁점6. 향후 온라인, 오프라인 대형 유통사들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중소출판사와 작가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도서정가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소비자인 국민들의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자신에게 소비자의 호응 없이 도서출판 생태계가 온전할 수 있는지를 반문해야 한다. 그리고 신인작가의 등장이 없이 생태계가 지속가능한지를 고민해야 한다.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든 개선해서 유지하든 그 언간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