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8) / 가련한 아버지들 – 정경해의 ‘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8) / 가련한 아버지들 – 정경해의 ‘살’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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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8) / 가련한 아버지들 – 정경해의 ‘살’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8) / 가련한 아버지들 – 정경해의 ‘살’

  살  

  정경해


  발톱을 깎다가 
  당신이 생각났어요
  툭하면 성질을 부리는 
  손톱깎이,
  살 한 점 베어 물고
  몸서리를 쳤지요
  멍하니 지난 기억 좀
  더듬었다고
  자세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갖가지 이유를 대며
  물어뜯던 그때
  당신은 
  영문도 모른 채
  피를 뚝뚝 흘리며
  미안한 듯 웃기만 했어요
  당신을 돌본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맡겨준 것임을
  움푹 팬 자리에 앉아
  아버지,
  당신을 생각합니다
  다시는 붙일 수 없는
  살덩이.

  -『인천 펜ㆍ문학』(통권 10호, 2019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8) / 가련한 아버지들 – 정경해의 ‘살’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내 아버지도 그랬었다. 병원 입원실과 요양병원을 오가다가 급성폐렴이 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임종이 임박한 수많은 환자들 곁에서 정신줄을 놓고 지내다가 간호사들도 잠든 한밤중에 숨을 거두었다. 세 자식 모두 그때 자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런 운명에 봉착할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발톱을 깎다가 엉뚱하게 아버지를 생각한다. 늙어 기동을 잘 못하게 된 아버지, 엉뚱한 말을 하는 아버지, 자식의 말을 안 듣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딸은 타박하였다. 내 일만 해도 바빠 죽겠는데 아버지를 돌봐주어야 하는 아주 귀찮은 일을 하게 된 딸은 아버지한테 역정을 내고, 짜증을 부리고, 꾸중까지 하고. 자신만만하던, 큰소리를 뻥뻥 치던, 젠체하던 아버지의 기질은 어디 가고 없고 주눅 든 늙은이가 그때 화자 앞에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내가 아버지를 돌본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맡겨준 자식이라는 자리였는데 화자는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손톱깎이에 살짝 베인 “다시는 붙일 수 없는/ 살덩이”가 바로 나였음을 뒤늦게 깨닫고 화자는 후회한다. 눈물짓는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불효자식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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