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89) / 방바닥에만 들러붙어 살다 – 정호의 ‘유금천’
유금천
정호
유금천 12세(6월 ?일생)
직 립 좌 립 불 가
한마음복지원 베드로 방
독감 후유증 앓던 금천이가 떠났다
뿌리박은 나무처럼 방바닥에만 들러붙어 있더니
ㄱ자로 꺾인 한쪽 다리 끌고 저승 문턱
용케도 넘어갔다
종일 누워서만 지내 납작바위가 된 뒤통수
장작개비 같은 몸 들어 올려주던 티 없이 싱글대던 눈
그에겐 보고 듣는 것 외엔 모든 게 불가능이었다
연필 움켜쥐는 손도 입까지는 닿지 않았다
유월에 금천구에서 주워왔다고 성과 이름도
유금천으로 살다 간, 영혼,
하늘복지원으로 자리를 옮겼구나 거기서 바깥세상
두루 해찰하고 있겠구나 한 번도 내뱉지 못한 속엣말
신기한 듯 실컷 옹알이하고 있겠구나
다들 놀이방으로 몰려가고 난 베드로 방
채 치우지 못한 신상명세표가 올려진 옷장 그 아랫단
크레용으로 괴발개발 그려놓은 여자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는
텅 빈,
—『철령으로 보내는 편지』(도서출판 가온, 2019)

<해설>
이 시를 모두 사실로 받아들인다. 유금천은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장애아였다. 열두 살 나이로 죽었다. 금천구 태생으로 일찍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한마음복지원에서 살다 독감에 걸려 고생하더니 하늘나라로 갔다.
시인은 유금천의 생을 담담히 들려준다. 동정심에 사로잡혀 혀를 차지도 않고 감상에 푹 젖어 흐느끼지도 않는다. 오히려 “뿌리박은 나무처럼 방바닥에만 들러붙어 있더니/ ㄱ자로 꺾인 한쪽 다리 끌고 저승 문턱/ 용케도 넘어갔다”고 하면서 다행스러워한다. 잘 죽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비정하게 썼을까? 금천이의 삶 자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증의 장애, 그 몸으로 간신히 버텨왔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천이는 웃고 있었다. “종일 누워서만 지내 납작바위가 된 뒤통수”를 갖고 있지만 “장작개비 같은 몸 들어 올려주던 티 없이 싱글대던 눈”을 갖고 있었다. “그에겐 보고 듣는 것 외엔 모든 게 불가능이었”지만 어머니를 내심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크레용으로 괴발개발 그려놓은 여자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텅 빈 눈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고 금천이는 10년 조금 더 살고서 그토록 아팠던 삶을 마감했다.
세상에는 이런 깊은 아픔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천이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금천이의 명복을 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