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2) / 뱀을 신성시하다 - 윤진화의 ‘뱀’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2) / 뱀을 신성시하다 - 윤진화의 ‘뱀’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1.31 11:44
  • 댓글 0
  • 조회수 278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2) / 뱀을 신성시하다 - 윤진화의 ‘뱀’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2) / 뱀을 신성시하다 - 윤진화의 ‘뱀’

  뱀
  ―산부인과에서 2

  윤진화


  오줌을 쌀 때마다
  쉬이익 쉬이익 소리가 들려 싫었는데

  그것은 방울뱀 소리

  초음파를 보는데
  아이의 중심에 뱀 대가리가 보인다

  화장실 갈 때마다
  쉬이익 쉬이익

  내 안에 또아리를 튼
  내 아이

  누구도 해치지 말자, 쓰다듬는다

  —『모두의 산책』(문학수첩,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2) / 뱀을 신성시하다 - 윤진화의 ‘뱀’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시가 참 특이하다. 뱀은 보통 터부시하는 파충류 동물인데 이 시에서는 반대로 좋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임신하고 나서 쉬를 할 때 그곳에서 나는 소리가 방울뱀이 숲을 헤치며 가거나 혀를 날름거릴 때 내는 소리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초음파를 보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아이의 중심에 뱀 대가리가 보였다. 아아 뱀파이어를 임신한 것도 아닐 텐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람. 

  구약성경에 나오는 뱀은 사탄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사실 그런 이미지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뱀이야 독을 갖고 있는 것도 본성인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독사는 사실 뱀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예로부터 뱀만 보면 죽이려고 했다. 바퀴벌레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쥐도 그랬었다. 인간의 눈에 띄면 십중팔구 죽게 되는 운명, 이 무슨 기구한 팔자란 말인가.

  시의 화자는 소변을 보면서 떠올리게 된 뱀을 터부시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묘하게도 초음파로 본 아이의 두상과도 닮은 것 같다. 어차피 내 안에 또아리를 튼 내 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를 가진 화자는 인류가 출현한 이래 뱀만 보면 돌을 던져, 혹은 도끼를 내리쳐 죽여 온 저간의 사정은 그렇다 치고, 뱀이든 무엇이든 해치지 말자고 결심하면서 자신의 배를 쓰다듬는다.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이 마음이 측은지심이고 자비일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사랑의 실천일 것이고.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