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5) / 별자리와 채송화 사이에서 - 신규호의 ‘채송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5) / 별자리와 채송화 사이에서 - 신규호의 ‘채송화’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2.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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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5) / 별자리와 채송화 사이에서 - 신규호의 ‘채송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5) / 별자리와 채송화 사이에서 - 신규호의 ‘채송화’

  채송화 

  신규호


  간밤에 누워 자던 별자리가 
  아침 화단에 내려와 눈뜨고 있다

  떨고 있는 채송화 꽃이여 
  몇 십 광년의 미망(迷妄)을 헤매다

  나도 너처럼 떨어져
  피어날 수 있을까

  눈먼 자여, 가슴속 하늘을
  주체할 수 없는 눈먼 자여

  밤하늘 피었다 사라지는 별똥만큼 
  목숨을 사루고 사루다

  나도 꽃밭에 떨어져
  한 점 채송화로 피어날 수 있을까 

  —『안양문학』(창간 제30집 특집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5) / 별자리와 채송화 사이에서 - 신규호의 ‘채송화’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인간은 모두가 유한자다. 오래 살아야 100년이다. 별도 수명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별빛은 이미 몇 십 혹은 몇 백 광년 전에 그 별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우리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이 우주에서 그 별은 존재할 것이다. 빛이 출발하고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그 별이 죽어 블랙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별똥은 별과 달리 우주를 떠돌다가(혹은 돌다가) 대기권 안으로 들어와 빛을 내며 떨어지는 물체다. 대체로 떨어지는 동안 대기권에서 공기와 마찰하면서 사라지는데 땅에까지 도달한 일부 별똥은 희귀한 광석 취급을 받는다. 

  채송화는 우리 눈에 흔히 뜨이는 꽃이다. 채송화도 생명체이고 유한자이고 이 우주의 구성인자다. 채송화를 아침 화단에 내려와 눈뜨고 있는 별자리로 본 것은 놀라운 깨달음이다. 채송화 꽃 하나가 피어난다는 것 자체가 저 먼 우주의 별자리가 화단에 떨어진 것이며 별똥 또한 목숨을 사루고 사루다 사라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화자는 이러한 자연의 오묘한 질서를 모른 채 살아가다가 채송화를 보고 문득 자문한다. 내 너무나도 무지몽매하니 너처럼 우주의 질서 속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피워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시인이기에 별자리와 별똥과 채송화를 한 자리에 놓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가 스스로를 평가하기에 미망을 헤매는 눈먼 자다. 밤하늘에 한 줄 빛의 선을 그리고 죽어간 별똥이나 맑은 날 낮에 피었다 오후 2시쯤 시드는 저 채송화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에 자책하고 있다. 별과 채송화 사이에 껴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이다. 하지만 채송화를 보고 우주의 섭리를 깨달았으니 이 또한 위대한 성찰이 아니랴.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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