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7) / 탈북 모자 아사하다 - 곽효환의 ‘죽음을 건너 죽음으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7) / 탈북 모자 아사하다 - 곽효환의 ‘죽음을 건너 죽음으로’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2.0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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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7) / 탈북 모자 아사하다 - 곽효환의 ‘죽음을 건너 죽음으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7) / 탈북 모자 아사하다 - 곽효환의 ‘죽음을 건너 죽음으로’

  죽음을 건너 죽음으로 

  곽효환 


  굶주림을 피해 사선을 넘은 지 10년 만에 쌀이 남아도는 나라의 수도 변두리 아파트에서 뇌전증을 앓던 여섯 살 아들과 엄마가 굶어 죽었다 수도요금 장기 연체에 따른 단수 조치로 식수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집, 냉장고엔 물 한 병 없이 비닐봉지에 든 고춧가루만 덩그러니 남아있었고 통장의 잔고는 0원이었다 월세 9만원을 10개월 가량 밀린 모자는 마지막 남은 3,858원을 모두 인출하고 보름쯤 지나 숨졌고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 앙상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열흘이 더 지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고 그 이튿날 광화문에 ‘아사탈북모자추모분향소’가 설치되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교보빌딩과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 사이 
  탈북민 단체와 북한인권단체들이 설치했다는 
  천막분향소는 한산하다 
  상주 없는 거리의 빈소 앞에는 
  보수단체와 보수야당에서 보낸 조화가 늘어서 있을 뿐
  지나는 사람들이 잠시 멈추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자의 죽음은 이렇게 전시되어 있다         

  늦게까지 물러설 줄 모르던 늦더위 가시고 
  광장에 무서리 내리고 
  갈까마귀 날아온다는 입동이 지났는데
  아직 그들의 장례는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사인 규명을 위한 경찰조사가 끝나지 않아서라고 했고, 법적으로 가족이나 친척 등 연고자가 아니면 고인의 장례를 치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의 전남편과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는 사인 불명이라고 했다

  북에서는 굶어죽을 뻔하고 
  남에서는 끝내 굶어죽은
  극심한 생활고와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리며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그녀와 아이는 
  살아서 받아보지 못한 
  법률의 보호와 뜻밖의 관심 속에 
  죽어서도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결과는 분명한데 원인을 모른다는 죽음을
  탈북민들만이 지키는 
  아사탈북모자추모분향소

  나는 생각한다
  그녀가 두려움에 떨며 강을 건넜을 북쪽의 그 밤을
  아이와 무서움 속에 울며 보냈을 남쪽의 마지막 밤을 
  난무하는 고성과 괴성이 일상이 된 광화문의 밤을

  -『문학나무』(2019년 겨울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97) / 탈북 모자 아사하다 - 곽효환의 ‘죽음을 건너 죽음으로’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이 시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정보 전달에 할애하였다. 마지막 두 연 정도에서 시인의 생각이 전개된다. 이런 시를 증언의 시라고 해야 할까. 시인은 시를 이런 식으로 씀으로써 이 기막힌 죽음이 오래오래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어머니는 어찌하여 뇌경련이 만성적ㆍ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뇌전증의 아이를 데리고 북한을 떠날 결심을 했던 것일까. 남한에 가면 아이를 치료하거나 잘 돌볼 환경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웬걸, 궁핍 중의 궁핍, 극빈 중의 극빈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북한이탈주민이 3만 명이나 되는데, 정부도 이들의 생활을 무조건 다 책임질 수는 없을 것이다.

  모자는 외면당했고 소외되었다. 남한 사회에 대해 적응력이 있었더라면 구호단체나 동사무소에 손을 내밀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수돗물도 끊긴 집에서 젊은 엄마와 병이 있는 여섯 살짜리 아들이 그만 굶어 죽었다. 장례식을 치러 주지 못하는 상황이 기막히다. 분단이 초래한 비극일까, 우리 사회의 냉정함이 초래한 비극일까. 시인은 이 비극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가슴아파했다. 시인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저 아파하는 수밖에. 시로 쓸 수밖에.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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