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0) / 생사가 아득타 - 조오현의 ‘내가 죽어보는 날’
내가 죽어보는 날
조오현
부음을 받는 날은 내가 죽어보는 날이다
널 하나 짜서 눈 감고 누워도 보고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기 뼛가루도 뿌려본다
―『문학의 문학』창간호(2007)

<해설>
오현스님은 2018년 5월 26일, 신흥사에서 입적하였다. 지상에 머문 기간은 86년, 술을 무척 좋아했기에 기적적인 장수였다. 본인도 그렇게 오래 살리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75세 즈음에 이런 시를 썼으니.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내가 죽은 날’이 아니라 ‘내가 죽어보는 날’이다.
불교의 윤회설이 이 제목 하나에 고스란히 설명되어 있다. 불가에서 죽는 날은 생의 끝 날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다. 또 다른 생명체로 소생하여 윤회의 고리를 이어갈 테니, 나는 내가 죽은 그날, 널 하나 짜서 눈 감고 누워도 보고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기 뼛가루도 뿌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런 인식은 삶 자체도 맑게 하리라.
만약 우리가 죽는 날을 대충이라도 알게 된다면 더욱더 쾌락에 탐닉하는 자와 남은 생을 선업으로 가꾸고자 하는 두 타입으로 나눠질 것이다. 죽음에 대한 오현스님의 이와 같은 인식은 세속사회의 나를 겸허한 반성의 시간으로 인도한다. 죽음은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며, 죽음은 생명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세계 3대 종교를 비롯해 뭇 종교의 창시자들이 말하였다. 자수를 지키지 않은 단형시조지만 욕망과 허위의 나날을 살고 있는 나 같은 범인에게는 법어처럼 둔중한 깨달음을 주는 가편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