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4) / 절대로 잊지 말자 - 고정애의 ‘세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4) / 절대로 잊지 말자 - 고정애의 ‘세뇌’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2.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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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4) / 절대로 잊지 말자 - 고정애의 ‘세뇌’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4) / 절대로 잊지 말자 - 고정애의 ‘세뇌’

  세뇌
  
  고정애


  귀에 쟁쟁하다
  상기도 또렷이 들리는 노랫말

  “붉은 피 끓는 예과 연습생
  일곱 개 단추에는 벚꽃과 닻 무늬
  오늘도 날아오른다 카스미가우라에선
  커다란 희망의 구름 솟는다”

  살아서 돌아올 확률 제로인
  출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스무 살 안팎 홍안(紅顔)의 청년들
  가미카제 특공대가
  발걸음을 맞추던 행진 노랫말이다

  손톱만큼도 청년 스스로가 끼어들 틈새는 없다
  새하얗게 탈색된 머릿속 뇌수에
  정교한 마이크로칩 살그머니 삽입하는,
  인간어뢰 인간폭탄 자살테러 부추기는 노랫말이다

  기나긴 세월 훌쩍 뛰어 건넌 오늘까지
  입가에 빙빙 맴돌게 하는
  일제(日帝) 군부(軍部)의 끈질긴 세뇌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날마다 돌아보는 기적』(문학의전당, 2020)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4) / 절대로 잊지 말자 - 고정애의 ‘세뇌’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한때 일본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는데 지인이 일본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보도 자료를 찾아보니 구정 연휴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여행 간 나라가 일본이라고 한다. 해가 바뀐 이후 일본상품 불매운동도 한풀 꺾인 느낌이다. 아, 우리는 아베 총리의 수출규제, 관세부가조치를 벌써 잊어버린 것인가. 일본은 위안부 손해배상문제에 대해서도, 징용인력 보상신청문제에 대해서도 모르쇠 내지는 오리발 작전으로 일관하고 있다. 1964년 한일회담 때 다 정리된 문제를 왜 또 끄집어내느냐고 하니, 하늘을 우러러 통곡할 일이다. 

  조선인이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죽은 것은 한겨레신문사 길윤형 기자가 쓴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에 따르면 17명이다. 탁경현ㆍ한정실ㆍ인재웅……. 서정주의 시 「송정오장송가」에 나오는 구절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가 바로 인재웅이다. 그들은 일본해군의 항공모함 탑재기 ‘제로센’에 250kg의 폭탄을 실은 뒤 미 항공모함에 몸체 공격을 하는 신풍(神風, 가미카제) 특공대의 희생양으로 죽었다. 열일곱 살 소년도 있었다. 

  일본은 그 소년과 청년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 “붉은 피 끓는 예과 연습생/ 일곱 개 단추에는 벚꽃과 닻 무늬……” 카스미가우라[霞ヶ浦]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시인은 그 노래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고 했다. 그 노래의 노랫말은 “인간어뢰 인간폭탄 자살테러 부추기는” 것이었지만 정교한 마이크로칩을 살그머니 삽입하는 것인 양 세뇌를 시켜 아이들까지도 멋모르고 신나게 따라 불렀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늘 그런 식이었다. 국어(일본어) 상용도 신사참배도 창씨개명도 황국신민의 서사 읽기도 강요한 것이었는데 우리는 서서히 길들어 갔다. 일제 군부의 끈질긴 세뇌가 오늘도 이어지고 있기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이들이 계속해서 이 땅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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