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5) / 일자무식이지만 - 김효연의 ‘폭염은 모른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5) / 일자무식이지만 - 김효연의 ‘폭염은 모른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2.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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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5) / 일자무식이지만 - 김효연의 ‘폭염은 모른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5) / 일자무식이지만 - 김효연의 ‘폭염은 모른다’

  폭염은 모른다
  
  김효연


  살 거도 아이맨서 와 자꾸 물어 쌌노
  하기사 살 사람 거트면 이래 묻지도 안것제
  씰데없이 이 염천에 댕기맹서
  보리밥 한 그릇 묵고 일일이 답할라카이
  내사 마 입에서 당내가 나거마

  얼굴이 벌겋게 익은 노파 입이 
  좌판에 늘어진 갈치보다
  더 날카로워진다

  그럼 가격을 붙여 놓지예

  글을 알아야 씨제
  지나내나 씨지도 익지도 몬하는데
  그람 또 아는 사람한테 실은 소리 해야 안하나

  옆 좌판의 노파는
  어린 갈치 대가리를 한꺼번에 자르며
  그중 나은 건 밀가루 묻혀 굽고
  나머진 졸이라며 칼 잡은 손이
  연신 이마 땀을 훔친다

  혀가 녹아내려도
  두 할머니는 폭염을 모른다
  절대 알 수가 없다

  변두리 시장 노점상 옆으로
  마을버스 혀를 빼고 올라온다

  ―『무서운 이순 씨』(시와반시,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5) / 일자무식이지만 - 김효연의 ‘폭염은 모른다’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어시장에 가보면 대체로 생선을 파는 이는 아주머니이고 생선을 손질해 주는 이는 아저씨로서 두 사람은 부부다. 그런데 이 시의 무대인 변두리 시장에서 갈치를 파는 이와 손질하는 이 모두 할머니다. 두 사람 중 깨죽거리는 할머니는 파는 쪽이다. 갈치는 생선 중에서 제법 비싼 축에 드는데, 그래서 값을 물어보고 그냥 가는 손님이 있다. 어떤 손님이 값만 물어보고 돌아서려 하자 할머니는 화를 내면서 몇 마디 한다. “그럼 가격을 붙여 놓지예” 하고 손님이 투덜거리자 할머니가 하는 말대꾸가 재미있고 슬프다. “글을 알아야 씨제”. ‘1만원’이나 ‘1만5천원’ 같은 쉬운 글도 못 쓰는 문맹 할머니 두 사람이 폭염 속에서 생산을 팔고, 손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해 여름 중에도 가장 더운 날이었으리라. 생선을 파는 할머니의 얼굴은 벌겋게 익어 있고 손질하는 할머니는 이마의 땀을 연신 훔치고 있다. 말을 할라치면 혀가 녹아내리는 듯한 염천인데 두 할머니는 더위도 모르는 양, 잊은 양, 열심히 생선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다.  

  내 친할머니도 평생 문맹이었다. 그래도 교과서와 참고서는 공부하는 책이고 소설책과 시집은 ‘잡책’임을 구분할 줄 아셨다. 할머니는 잡책을 줄기차게 숨겼는데 숨겨보았자 뻔한 곳, 형은 사르트르와 카뮈가 쓴 잡책을 보면서 서울대 철학과에 갈 꿈을 키웠다. 방학 때 대구 할머니 댁에 가면 두 사람은 책 숨기기와 찾아내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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