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7) / 반달가슴곰의 행방 - 정희경의 ‘반달가슴곰 KM-53’
반달가슴곰 KM-53
정희경
계절이 짙어 와서 더 보이지 않는다
윤기를 잃어버린 백두대간 수풀 사이
바람의 낯선 소문들 무성하게 쏟아질 뿐
천년을 길들여 온 야성은 살아 있어
오가는 발걸음에 반달 가슴 자꾸 뛰어
철 지난 동면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가
꿀벌도 흰개미도 자취 감춘 어둔 밤은
철골만 앙상한 끝없는 긴 울타리
도시는 콘크리트 위에 열대림을 세운다
―『열린시학』(2019년 가을호)

<해설>
반달가슴곰 KM-53이 과연 잘 살아가고 있을까? 죽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살아 있는 모양이다. 제발 천수를 누리고 죽기를. KM은 한국(Korea)에서 태어난 수컷(Male)이라는 뜻이고, 숫자는 방사 순서, 출생연도, 방사 연도를 의미한다. 종 복원을 위해 북한과 러시아에서 들여온 개체에는 북한(North Korea)산 암컷(Female)이란 의미의 NF, 러시아(Russia)산 수컷(Male)에는 RM이 붙었다.
정희경 시조시인은 각주를 달았는데 “2015년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 KM-53’은 지리산을 수차례 탈출해 결국 2018년 김천 수도산에 방사되었는데 2019년에는 구미 금오산에서 발견되었다.”이다. 모험심이 대단해 지리산을 몇 번이나 벗어난 모양이다. 자식, 내 고향 김천에 갔으면 거기서 좀 더 살지 왜 구미 금오산으로 간 것이냐. 현인의 「신라의 달밤」이란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곰은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들어가는데 이 땅의 이상기온이 KM-53이 겨울잠을 자게 할까, 시인은 걱정이 되나 보다. 꿀벌이며 흰개미며 잔뜩 먹어야지 잠을 청할 수 있는데 그런 먹이를 찾아낼 수 있을까? “철골만 앙상한 끝없는 긴 울타리/ 도시는 콘크리트 위에 열대림을 세운다”는 제3수의 중장과 종장이 가슴을 때린다. 이 나라는 산이고 들이고 어디를 가나 철제 울타리가 가로막는다. 도시는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도 별로 춥지 않다. 실내는 더더욱. 지구온난화는 수많은 생명체 종의 멸종을 가져왔다. 하지만 최소단위인 바이러스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반달가슴곰 KM-53을 잘 돌보지 못하면 우리는 더 큰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KM-53의 생존 여부는 우리나라 종복원기술원의 존재 여부를 결정짓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천년을 길들여 온 야성은 살아 있어/ 오가는 발걸음에 반달 가슴 자꾸 뛰어”라는 시인의 예언자적 발언에 십분 공감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