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2) / 그 가혹한 노동을 - 구재기의 ‘앞니 톱자리’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2) / 그 가혹한 노동을 - 구재기의 ‘앞니 톱자리’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2.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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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2) / 그 가혹한 노동을 - 구재기의 ‘앞니 톱자리’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2) / 그 가혹한 노동을 - 구재기의 ‘앞니 톱자리’

  앞니 톱자리 
  
  구재기 


  앞니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고모의 앞니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과년에 시집가서
  남매를 낳고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우리 고모
  앞니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앞니가 파졌어요
  모시를 얼마나 많이 째댔으면
  마치 톱으로 가로질러 
  썰어낸 듯한 톱자리가 생겼을까요
  그러고 보면 모시 올이 부드러운 것만은 아닌가 봐요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겉으로는 부드럽기 한량없는 우리 고모
  하루 한 날
  토해내고 싶은 말이 없었을까요
  참고 참으면서 모시만 쥐어뜯은 거에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시집살이의 열기를
  입으로만 소리 없이 내뿜어대면서
  모시만 째다보니
  앞니에 톱자리가 생긴 거예요
  겉으로 한량없이 부드러운 우리 고모
  속은 타고 또 타서 
  억셀 대로 억세진 거예요
  억센 톱 자리가 앞니에 생긴 거예요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시와소금,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2) / 그 가혹한 노동을 - 구재기의 ‘앞니 톱자리’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이 시가 실려 있는 시집에는 71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모두 모시에 대한 시다. 해설을 쓴 황정산 씨도 오랜 시간 이 어려운 작업을 해온 시인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는데 나 역시 시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모시에 대한 모든 것을 한 권의 시집에 담았다. 모시적삼 한 벌이 만들어지는 과정, 모시에 관한 전설, 여성의 힘든 노동에 대한 묘사, 모시에 대한 각종 용어 조사……. 박물학적 조사와 다년간의 연구에 존경심을 표한다. 

  이 시에서는 화자의 고모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과년에 시집가서 남매를 낳고 청상과부가 되었다. 어떻게 남매를 키웠을까? 모시 앉을게에 앉아서 하루 열 시간은 일했을 것이다. ‘이골이 난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시인의 설명을 읽어보니 눈물이 난다. 모시풀을 벗겨낸 뒤 앞니를 이용해서 그 올을 쪼갠다고 한다. 쪼갠 올에 침을 발라서 무릎에 비벼 이어감으로써 천을 짤 수 있는 실을 만드는데 그 동안 입술이 부르트고 침이 마르고 앞니에 골이 파이고 무릎도 성할 날이 없단다. 
계속 침을 발라가며 삼아야 하기에 한 필 만드는 데 침이 석 되 들어간다고 하니 그 고생이 어느 정도일까. “겉으로는 부드럽기 한량없는 우리 고모”는 “모시만 째다 보니/ 앞니에 톱자리가 생긴 거”다. “속은 타고 또 타서/ 억셀 대로 억세진 거”다. 

  양반들은 모시로 된 옷을 입고 에헴! 하고 출타했겠지만 화자의 고모를 비롯한 이 땅의 수많은 여성은 앞니에 톱자리가 생길 정도로 일을 했다. 그 가혹한 노동의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시집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는 우리말에 대한 시인의 애정도 십분 느낄 수 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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