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8) / 내 자유를 누가 감히 - 권박의 ‘서른이 되어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8) / 내 자유를 누가 감히 - 권박의 ‘서른이 되어도…’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2.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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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8) / 내 자유를 누가 감히 - 권박의 ‘서른이 되어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8) / 내 자유를 누가 감히 - 권박의 ‘서른이 되어도…’

  서른이 되어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밥 먹고 웃고 수다 떠는 것
  
  권박


  처음은 육하원칙으로.
  놀이 같은 것으로.

  어떤 날은 담아 두고 싶지 않는 것을 말하는 방식으로.
  가령, 바람이 불지 않는 동안 바람을 생각했던 것.
  가령, 멍들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것.

  이름은 굴림체처럼 생일은 얼음처럼
  성별은 트럭 같은 것으로 장소는 주저앉은 낙오자로
  행동은 에필로그에서 중독되어 왜? 자꾸 파고드는 거니?

  계속되는 충고는 이국적이다. 치즈처럼 녹여 먹기 좋다. 목각처럼 깎인 혓바닥이다.
  잘리다 만 혓바닥을 더 부러뜨리자. 죄책감처럼 갈수록 뭉툭뭉툭해지자. 

  마지막 밤. 너무 많은 입이 있던 방.
  생각나?

  어떤 종류의 다정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
  사람처럼 핥을수록 뾰족해지는 말이라고 말한 것.

  그러니까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육하원칙처럼 묻고 또 묻는 놀이 같은 것. 

  ―『이해할 차례이다』(민음사,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18) / 내 자유를 누가 감히 - 권박의 ‘서른이 되어도…’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권박 시인은 1983년생이므로 30대 후반이다. 2012년에 등단하여 작년에 첫 시집을 냈다. 이 시집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는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었을 때의 심회를 읊조린 것이 아닐까.

  발상은 엉뚱하고 생각은 비논리적이고 표현은 팝콘처럼 사방팔방으로 튄다. 대체로 서정시에서 직유법을 세 번 이상 쓰면 어색해지는데 의도적으로 쉴 새 없이 쓴다. 정공법으로 시를 쓰는 기성시인들의 시 문법을 따르지 않으려 하는 자유분방함이 권박 시인의 매력이다. 

  30대가 된 화자의 자기 정체성 확인 작업이라고 할까, 앞으로 어떤 태도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사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는데 화자는 반신반의한다. 육하원칙: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고 묻고 확인하는 삶이란 얼마나 지겨운가. 내키는 대로, 즉 그때그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 되지 않았겠느냐고 화자는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말’이다. 사람들이 웬 말이 이렇게 많은가. 나도 수다 뜨는 무리의 일원이고 수다는 방을 꽉 채운다. 부드러운 말, 날카로운 말, 상처를 주는 말, 상처를 낫게 하는 말……. 이 세상에 인정받는 수다쟁이가 예전에는 소설가였는데 이제는 시인이다. 시인에게는 암호 같은 말을 횡설수설 지껄일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이제는 너희들이 나를 이해할 차례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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