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훈 칼럼] 기도하고 일하며 수도사들이 빚은, 트라피스트 맥주
[공병훈 칼럼] 기도하고 일하며 수도사들이 빚은, 트라피스트 맥주
  • 공병훈 교수
  • 승인 2020.02.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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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훈 칼럼] 기도하고 일하며 수도사들이 빚은, 트라피스트 맥주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살기 위해 양조하지 양조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트라피스트회(Trappist) 수도사들이 빚는 맥주이다. 벨기에 2개소, 네덜란드 2개소,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미국 각 1개소 등 세계 13개의 수도원들만이 트라피스트협회가 인정하는 트라피스트 맥주를 만들고 있다. 맥주병에는 ‘어센틱 트라피스트 프러덕트(Authentic Trappist Product)’라는 육각형 로고가 레벨에 붙어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의 인기에 편승하여 가짜들이 등장하자 수도원들이 모여 트라피스트협회를 만들어 표시하게 된 정품인증서인 셈이다. 

트라피스트회 수도자들은 봉쇄구역에서 성 베네딕트의 규칙에 따라 공동생활과 관상생활을 영위한다. 하루 7번의 성무일도와 기도, 노동, 독서, 채식 등 엄격한 수행 생활이 뒤따른다. 트라피스트는 노르망디의 오른에 있는 개혁수도원 라 트리프(La Trappe)에서 나온 명칭이다. 트라피스트 수도회는 시토회(Ordre cistercien)에서 비롯되어 1098년 프랑스 시토에서 창립되었으며공식 명칭은 ‘엄률(嚴律) 시토회(Order of Cistercians of the Strict Observance)’이다.
관상(觀想)은 실천적 태도와는 상대적으로 인식·명상·묵상 등의 정관적 태도를 의미한다. 초감각적·초월적 존재를 직관하는 것, 또는 신적 존재와 합일하는 것으로서, 신앙에 의한 진리를 논리적인 논증에 의하지 않고 경험적·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장기적인 수련에 의하여 능동적으로 얻게 되기도 하고 신비체험 등에서 수동적으로 얻기도 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양조하지, 양조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라는 모토를 지닌 트라피스트 수도회
“우리는 살기 위해 양조하지, 양조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라는 모토를 지닌 트라피스트 수도회

중세 수도원 운동의 확산과 수도원 사업활동

로마 말기에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교회는 지배 권력의 일부로 참여하고 세속화의 길로 들어섰다. 교회 세속화에 반대하고 그리스도교의 규칙에 기반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려는 수도원 운동이 8세기부터 시작하였다. 수도운동은 관상 생활로 일관하는 관상 수도회와 포교나 교육에 종사하는 활동 수도회와 구별된다. 수도원 운동에 뿌리를 두고 중세 귀족과 권력자들로부터의 후원을 멀리하며 중세 수도사들은 스스로 노동하며 활동은 고전을 필사, 주석, 편집하여 학문적 명맥과 지식 출판 활동을 유지하고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개간, 농업기술의 개량, 수공업의 발전 등 경제 분야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수도회 운동의 열정은 12세기 기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3대 기사수도회를 낳았다. 그중 처음부터 성지방위라는 군사목적으로 만들어진 템플기사단이 있고, 요한기사단과 독일기사수도회는 성지순례자나 십자군 부상병에 대한 의료활동에서 출발하였다. 한편 스페인에서도 12세기 후반에는 시토회의 영향을 받아서 카르트라바, 산티아고, 알칸타라 기사수도회가 탄생하였고,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대 이슬람전인 국토회복전쟁의 불가결한 추진력이 되었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피혁과 목재가 가공되고 구두가 만들어지고 양모가 제사(製絲)되며 맥주가 제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장신구, 성물, 양피지를 비롯한 각종 물건들이 제조되었다. 수도원의 생산활동은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했지만 과일 생산되는 물품이 늘고 등잔기름, 공구, 소금 등 필요한 물품들도 있어서 상거래를 시작하고 물품 판매와 구매를 위해 먼 나라로 파견되기도 했다.

시음하는 수도사를 그린 요셉 바그너 퀠른(Josef Wagner-Höhenberg)의 19세기 작품
시음하는 수도사를 그린 요셉 바그너 퀠른(Josef Wagner-Höhenberg)의 19세기 작품

맥주의 기원은 BC 8500년경의 신석기 시대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맥주를 빚은 유물에까지 거슬러올라간다. BC 6000년에서 BC4000년 사이의 설형문자 문서에서 보리 맥주로 빚을 갚았다는 기록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맥주 빚는 기술을 꽤 발전시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맥주에 관한 법률이 나와 있다. 약 5000 년 전에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우루크 도시의 노동자 들은 맥주로 고용주들에 의해 임금을 받았다. 이집트 기자의 대 피라미드 건설 근로자는 매일 4 ~ 5 리터의 맥주를 배급 받았으며, 이는 피라미드 건설에 중요한 영양과 다과를 제공했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를 즐겨 마시고 맥주를 마시는 페르시아인들을 경멸했다. 하지만 그리고 이외의 지역에서는 보리와 물을 적절하게 혼합하면 쉽게 발효시켜 빚을 수 있는 맥주가 널리 유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맥주 양조 기술이 본격으로 발달한 것은 중세 수도원에서부터였다. 중세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금식 기간 동안 기분 좋은 맛을 내는 음료를 마시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8세기경 영국의 에일(ale)과 포터(porter)가 만들어졌고, 10세기경부터는 맥주에 쌉쌀한 맛을 내는 홉을 첨가했다. 수도원의 맥주라고 부르는 트라피스트 에일(Trappist ale)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 시기 단식 등으로 부족해진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교황으로부터도 허락이 주어진 당시에는 맥주를 액체 빵이라고도 부를 만큼 풍부한 영양분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역이 문맹이던 중세 유럽과는 달리 교육과 학문의 중심지였던 수도원 수사들을 통해 맥주 양조법이 더욱 발전되면서 전해질 수 있었다.  

‘맥주의 왕’이라고 불리는 베스트블레트런. 맥주별에 라벨을 부착하지 않는 전통을 지고 있다.
‘맥주의 왕’이라고 불리는 베스트블레트런. 맥주별에 라벨을 부착하지 않는 전통을 지고 있다.

트라피스트 에일 중, 베스트블레트런(Westvleteren)은 1838년부터 성식스토수도원(Sint-Sixtusabdij)에서 양조되는 맥주로서 애호가들 사이에서 ‘맥주의 왕’이라고 불린다. 수도원과 자선 활동에만 맥주 판매를 활용하기 위해 재판매를 엄격하게 제한하려고 수요와 상관없이 생산량을 늘이지 않고 있으며 맥주병에 라벨을 부착하지 않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심플리시티(simplicity)는 신의 단순성(divine simplicity)에 대한 설명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신이 단순한 존재라는 뜻은 신이 물과 독립적이며 그 자체로 본질인 궁극의 종재이며 불변과 영원의 특징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는 고전적 유신론의 교리들 중 하나이며 신에 대한 기본적 설명이다. 종교 의상이 대표적이며 단순한 디자인이 가장 좋은 디자인임을 보여준다. 심플리시티는 1960년대에 장식이 없는 단순하고 검소한 디자인으로 세련됨을 표현하는 패션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다가 광고,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과학철학에서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베스트플레이터런 맥주병은 심플리시티 디자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트라피스트 맥주 양조장에서 일하고 있는 수도사
트라피스트 맥주 양조장에서 일하고 있는 수도사

트라피스트 맥주의 기준과 성배 모양의 잔

시토회는 수작업과 자급자족을 강조했다. 수도사들은 성 베네딕토가 쓴 규칙서(The Rule of St. Benedict)의 내용에 따라 생활하였는데 그 정신은 ‘평화’(pax)와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로 집약된다. 이름을 한자로 음차하여 분도회(芬道會)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 베네딕도회는 통일된 하나의 수도회가 아니며, 각 수도원들이 하나의 수도회를 이루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베네딕도회가 존재한다기보다는 베네딕도 규칙서를 지키는 수도원들이 존재한다는 표현이 더 맞다.  

‘평화’와 ‘기도하며 일하라’라는 규칙에 맞게 트라피스트회는 전통적으로 농업, 맥주, 도자기, 잼, 잴리 등을 만들어 공동체를 위한 자립적인 생활을 해왔다. 맥주를 위한 원료도 직접 농업 활동을 하여 생산한다. 영리가 아니라 경건함과 헌신, 엄격한 관찰을 추구한다. 따라서 각각의 수도원별로 향과 맛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트라피스트협회는 트라피스트 맥주에 대해 적용하는 다음 3가지 기준에 맞으면 트라피스트 육각형 라벨을 부착할 수 있게 한다. 이 3가지 기준을 보면 성 식스투그 수도사들은 품질에 신경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윤과 효율성 추구라는 사업 규칙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맥주는 수도사 자체 또는 감독하에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벽 내에서 양조해야 한다.
둘째, 양조장은 수도원 내에서 2 차적으로 중요해야하며 수도원 생활 방식에 적합한 사업 관행을 목격해야 한다.
셋째, 양조장은 수익 창출을 위한 것이 아니다. 수입은 수도사들의 생활비와 건물 및 부지의 유지 보수를 포함한다. 남아있는 것은 사회 사업을 위해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부된다.

트라피스트 벨기에 맥주 양조장은 맞춤형 맥주 잔을 제공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포도주잔과 같이 목이 길고 둥근 성배 모양의 전용 잔에 따라 마신다. 성배 모양의 잔은 유리가 두껍고 맥주의 거품과 멋을 위해 에칭(etching) 처리되어 있다.          

성배 모양의 뚜꺼운 유리에 에칭 처리된 트라피스트 맞춤형 잔
성배 모양의 뚜꺼운 유리에 에칭 처리된 트라피스트 맞춤형 잔

아랫것들이 마시던 트라피스트 에일 맥주

트라피스트 맥주는 상면 발효(top fermentation)로 만들어지는데, 상면 발효는 맥주 양조에 사용되는 발효 형식의 하나이다. 18도에서 25도 정도 비교적 상온에 가까운 고온에서 발효시킬 때 거품과 함께 위로 떠오르는 성질을 가진 효모를 사용하여 맥주를 만든다. 에일 맥주를 비롯하여 와인, 막걸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술은 상면 발효로 만들어지는데 하면 발효처럼 저온을 유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발효가 쉽고 속도가 빠르다. 반면 발효(bottom fermented beer) 는 발효 후에 하단에 가라앉은 효모를 사용한다. 하면 발효 방식은 냉장기술이 없던 시절이나 추운 지방 또는 특정한 계절에만 가능했기 때문에 15세기에 이 발효법이 등장하기 했지만 널리 퍼지진 못했다. 하지만 냉장 기술이 발달한 19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퍼져서 지금은 세계 맥주 생산량은 대부분을 라거류가 차지하고 있다.

에일(Ale) 맥주는 상면 발효 맥주의 하나이며 과일향이 나고 걸죽하며 쓰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으로 중세 수도원의 많은 맥주들이 애일 맥주들이었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보통의 맥주를 마실 때처럼 벌컥벌컥 들이켤 수 없고 와인처럼 맛을 음미하면서 마셔야 한다 한다. 알코올 도수가 강하기 때문이다. 영국 귀족들은 벌꿀 술인(mead)를 즐겨 마셨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영국에서는 에일이란 뜻에 계급적 편견이 담겨 있었다. 에일이란 곡물로 만들어 아랫것들이 마시던 술이었던 것이다. 

성배 모양의 뚜꺼운 유리에 에칭 처리된 트라피스트 맞춤형 잔
중세의 성 버나드(St. Bernard) 수도원의 효모와 제조법의 성 버나드 에일 맥주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마르틴 루터 또한 맥주 애호가로 전해지는데 그의 부인은 카트리나 본 보라는 수도원에서 맥주를 만들던 수녀였다고 한다. 마르틴 루터가 자택 식탁에서 필리프 멜란히톤, 카스파르 크루치거, 유스투스 요나스, 비투스 디트리히, 요한 부겐하겐, 요한 포스터 같은 다양한 부류의 신학자들과 더불어 신앙과 교리 문제에 관해 나눈 대화를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다. 그 책이 『탁상담화』(The Table Talk Of Martin Luther)인데 루터가 남겼다는 인용문이 전해진다. 

“맥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잠을 잘 자게 된다. 잠을 자는 동안은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맥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다”

이 구절을 읽으면 그의 부인이 양조한 맥주를 식탁에 두고 마시며 열띠고 흥겨운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공병훈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 학회장.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앱(App) 가치 네트워크의 지식 생태계 모델 연구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디어 비즈니스, PR, 지식 생태계이며 저서로는  『광고는 어떻게 세상을 유혹하는가?』,  『4차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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