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0) / 생존한다는 것 - 김신용의 ‘밥 이야기 2’
밥 이야기 2
김신용
그녀의 식도는 옆구리에 붙어 있다
발이 하나 더 달린 기형의 동물처럼, 목구멍 속에 있어야 할
식도가 옆구리의 살을 뚫고 위에 박혀 있다
몸을 팔아야 겨우 이어가던 목숨이 더러워, 그만 마셔버린 쥐약
그러나 몸속을 들락거리며 생의 척추를 갉아먹던 매음굴의
쥐새끼는 잡지 않고, 식도만 태워버려
그녀는, 플라스틱으로 인공식도를 옆구리에 박았다
인간이, 기형의 동물처럼 얼마나 혐오스러울 수 있는가를 표본으로 보여주듯,
(이 얼마나 교묘한 밥의 신神의 복수인가!)
그녀는 이제 목구멍으로 어떤 음식물도 삼킬 수가 없다
아무리 목이 타도 물 한 모금 마실 수가 없다
플라스틱 깔때기 주둥이가 달린 이 인공식도를 통해
모든 음식물을 삼켜야 한다. 옆구리에 돋아난
이 새로운 밥의 길― 짓밟히더라도 결코 죽어서는 안 될
세상을 향한 복수처럼, 이 새로운 밥의 길을 걸어
그녀는 또 매음굴로 간다. 생의 척추를 갉아먹던
쥐새끼를 다시 몸속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살기 위해서는 바퀴벌레라도 씹겠다고 이 악물며―,
―『몽유 속을 걷다』(실천문학사, 1998)

<해설>
『버려진 사람들』과 『개같은 날들의 기록』에 이어 『몽유 속을 걷다』까지 이어진 김신용의 시세계는 우리 사회 최하층민들의 초상화였다. 그의 시의 공간적 배경은 소외되고 헐벗은 군상이 ‘몸으로 때우며’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부산 초량 텍사스와 서울역 앞 양동이 예전에 어떤 곳이었는지 김신용의 시집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사장의 함바(현장식당), 무허가 판자촌, 감방의 차가운 마룻바닥, 남대문 인력시장, 혈액병원, 아파트 신축공사장, 남해 작은 낙도의 술집 골목, 불구의 소녀가 들것에 실려 사라진 공원, 창신동 개구멍방, 행려병자의 시체가 매달려 있는 밤의 포르말린 탱크, 동사하지 않으려고 연탄 화덕을 끌어안던 전라도 밥집 골목, 뱃길 막힌 소래 포구, 공단부지로 변할 염전(방죽벌) 등이 시의 무대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하루하루 간신히 이어간다. 즉, 사는 것이 아니라 목숨이 붙어 있으니 악착같이 연명하는 것이다.
자살을 기도했던 어느 여성이 목숨을 건진 이후의 모습을 보라.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살아보려고 버르적거리는 실존적 존재인 것을. 그녀는 살아보려고 또 생존을 위한 전선으로 몸이라는 무기를 들고 나선다. 악착같이. 김신용의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기계 앵무새』『새를 아세요?』는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제르미날』『나나』와 견줄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의 자연주의자, 바로 김신용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