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2) / 일본에 유교를 소개하다 - 강항의 ‘다리’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2) / 일본에 유교를 소개하다 - 강항의 ‘다리’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3.01 07:00
  • 댓글 1
  • 조회수 117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2) / 일본에 유교를 소개하다 - 강항의 ‘다리’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2) / 일본에 유교를 소개하다 - 강항의 ‘다리’

  다리

  강항 


  다리는 
  만리를 간단다.

  만리를 가도록
  시키는 것은 마음이란다.

  脚到萬里心敎脚

  ―최향 엮음, 『우리 옛 동시』(글동산, 2000)

사진=한송희 에디터

 

  <해설>

  오늘이 3ㆍ1운동 101주년이 되는 날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강항(姜沆, 1567〜1618)이 다섯 살 때 쓴 시를 소개한다. 원래 한자 일곱 글자로 되어 있는 것인데 옛날 동시로 간주할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인데 어린 강항이 이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신기하다. 일찍 철이 든 신동이었을까?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강항은 고조할아버지가 조선 초의 명신 강희맹이다. 강항은 1588년 진사시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때인 1593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다. 1594년 승정원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해 공조좌랑을 거쳐 형조좌랑을 지냈다. 잠시 휴가를 얻어 영광에 내려와 있던 중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강항은 참판 이광정의 휘하에 배속되어 군량미 수송 임무를 수행하던 중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원균의 칠천량 해전으로 벌어진 남원성 전투는 성이 함락되어 엄청난 학살극이 벌어지는 파국을 맞았고 강항은 목숨을 겨우 건져 영광으로 피신한다.

  강항은 왜군을 막아내기 위해 고향사람들을 규합해 의병을 일으키지만 남원성을 함락시킨 후 전라도 일대를 휘젓고 다닌 왜군의 기세가 막강한데다 불과 10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숫자로 왜군을 맞선다는 것도 중과부적이라 의병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강항은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순신의 진영으로 가려고 가족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1597년 9월 23일 그만 왜군에게 붙잡히고 만다. 명량해전이 끝난 지 불과 며칠 안 된 시점이었다. 몇몇 가족은 왜군에게 붙들려 일본으로 끌려가는 길에 목숨을 잃는다. 심지어 왜군은 강항의 어린 조카가 갈증에 시달린 끝에 바닷물을 마시고 구토와 설사를 하자 줄 약이 없다면서 바다에 집어던져 버리기까지 했다. 강항은 이런 피눈물 나는 상황을 보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왜군이 가로막아 실패하게 된다.

  강항과 남은 가족은 쓰시마와 오키를 거쳐 이요의 오즈성(오늘날의 에히메현 오즈시)으로 끌려갔다. 이곳에서 지내다가 1598년에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해 오즈에서 오사카를 거쳐 수도인 교토의 후시미성으로 옮겨졌다.

  교토에서 강항은 여러 일본인들과 교류했는데 대표적 인물이 요시다 소준과 그의 제자 리안, 그리고 후지와라 세이카 등이었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본래 선종 승려였으나 유교에 관심이 많았고 강항에게서 조선 유교를 전수받게 된다. 한편으로 강항은 교토에서 일본인들과 교류하면서 얻은 정보를 은밀히 조선으로 보내기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 후지와라 세이카와 세이카의 주군인 다지마 성주 아카마츠 히로미츠의 도움으로 1600년 강항은 억류된 이들을 이끌고 조선으로 귀국할 수 있게 된다. 

  강항은 귀국 후 고향에 은거해 후학을 양성하는 데 주력하다가 1618년에 사망했다. 자신이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간양록』이다. 단순히 견문록 수준이 아니라 전문 정보요원의 정보수집 수준으로 일본의 속사정을 정리, 일본이 다시 침략해 오는 것을 방지하는 데 집필의 목적을 두고 썼다. 일본의 오즈시 중심가에는 홍유 강항 현창비(鴻儒姜沆顯彰碑)가 세워져 있다. 현창비 옆의 안내문에는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이라고 적혀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한 2020-03-01 20:54:28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유교는 교과서를 통해 학술적으로 파악하는게 옳음.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http://blog.daum.net/macmaca/2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