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3) / 북극의 안부-강순의 ‘인플루엔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3) / 북극의 안부-강순의 ‘인플루엔자’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3.0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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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3) / 북극의 안부-강순의 ‘인플루엔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3) / 북극의 안부-강순의 ‘인플루엔자’

  인플루엔자 
  
  강 순 


  적당한 거리에 대해 아무도 정의할 수 없다

  나와 당신이 건널목에서 
  비 오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비에 젖은 우산을 사이에 두고
  할 말을 찾으며 마주 서서
  푸른 신호등처럼 갑자기 터지는
  적당한 인사말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잘 지냈어요? 북극은 아직 겨울인가요?
  북극에 당신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떠나간 말들을 주워 올릴 도구가 없어서
  우산을 열심히 들고 있다

  당신은 북극에 간 적이 없고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적 없지만
  서로의 위치에서 서로의 기억을 재기로 한다

  북극의 날씨는 어때요?
  백야는 우리만큼 가깝고 멀어요

  당신이 도로를 건너오면 
  나는 도로를 건너지 않을 것이고
  내가 도로를 건너가면
  당신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해
  북극에는 느린 우체부가 항상 대기 중이다

  ―강순, 『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파란, 2020)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3) / 북극의 안부-강순의 ‘인플루엔자’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수많은 사람이 질병과 싸우고 있어서 그런지 이 시가 눈에 들어왔다. 일반인에게 ‘독감’으로 알려져 있는 인플루엔자는 A형 또는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급성 호흡기질환이다. 유전자 변이를 통해 해마다 기승을 부려 왔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더욱 진화된 변종을 하여 전염성도 더 빠르고 인간의 폐에 바로 침투해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남의 몸속의 인플루엔자가 내 몸에 안 들어오려면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하는데 엘리베이터 안에 1분만 같이 있어도 전염이 된다고 한다. 적당한 거리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리일까? 

  이 시는 인플루엔자에 대해 직접적인 묘사를 하지 않고 있다. 시적 화자가 계속 궁금히 여기는 것은 북극의 기상이다. 재작년에 알레스카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있어 가보았는데 놀랍게도 북극 대륙이 무서운 속도로 녹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지구온난화는 베니스 같은 수상도시를 없애고 더 많은 바이러스가 활동하게 하고 황사에 미세먼지에……. 트럼프 대통령은 탄소배출 규제를 위한 파리협정 국가에서 탈퇴하였다. 왜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고생하게 되었는지, 그 근본을 이제 따져보아야 한다.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해 북극에는 느린 우체부가 항상 대기 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자연은 빽빽 경고음을 울리고 있는데 우체부가 느려서 문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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