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4) / 절망과 희망 사이 - 이향란의 ‘내 절망의 언어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4) / 절망과 희망 사이 - 이향란의 ‘내 절망의 언어는’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3.0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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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4) / 절망과 희망 사이 - 이향란의 ‘내 절망의 언어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4) / 절망과 희망 사이 - 이향란의 ‘내 절망의 언어는’

  내 절망의 언어는
  
  이향란


  내 절망의 언어는
  희망이다

  내 절망의 언어는
  찬란과 황홀로 옷을 짜 입으며
  환희로 철없이 뒹굴며
  조여드는 심장의 한가운데에 빨갛게 그려 넣은 입술이다

  내 절망의 언어는
  그늘을 불러내는 햇빛이며
  철없이 바닥에 누운 비둘기의 먹이이며
  숨어서도 우렁차게 부르는 노래이다

  지금 마악 활시위를 떠나
  날아가는 화살이다

  내 절망의 언어는
  눈물을 흘리며 포복절도하는 웃음이다

  벗을 수 없는 가면이다
  해와 달이 번갈아 발을 담그는
  웅덩이 속의 물이다

  ―『너라는 간극』(시인동네, 2016)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4) / 절망과 희망 사이 - 이향란의 ‘내 절망의 언어는’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절망스런 나날이다. 눈만 뜨면 확진환자와 사망자의 수를 확인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간과 지금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간 광우병,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구제역, 메르스…… 온갖 질병이 이 땅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이번만큼 지독하지는 않았다. 하루빨리 병마의 약진이 멈춰지거나 수그러지기를 바라면서 희망의 노래를 골라보았다. 매일매일 절망스럽지만 아침이 오면 또 해가 떠오르고 비둘기는 먹이를 찾아 날개를 퍼덕인다. 절망 속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포복절도할 일이 생길 수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지니. 

  우리나라의 가면 중에는 웃는 얼굴이 많다. 속으로는 눈물이 솟구치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살자는 뜻에서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해와 달이 번갈아 발을 담그는/ 웅덩이 속의 물”은 아주 상징적인 표현이다. 웅덩이 속의 물도 세상에 해와 달이 있음을 알고 비추는 것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가. 마스크를 쓰고라도 이왕이면 밝은 얼굴로 사람을 대하자. 

  14세기 때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었다. 1918년에는 스페인독감으로 5천만명이, 1957년에는 아시아독감으로 100만명이, 1968년에는 홍콩독감으로 800만명이 죽었다. 그래도 그런 질병과 싸워 이긴 우리 인간이다. (이긴 건지는 잘 모르겠다.) 백신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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