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6) / 약의 나라에서 - 조우연의 ‘약국’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6) / 약의 나라에서 - 조우연의 ‘약국’
  • 이승하 시인
  • 승인 2020.03.0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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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6) / 약의 나라에서 - 조우연의 ‘약국’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6) / 약의 나라에서 - 조우연의 ‘약국’

  약국藥國
  
  조우연

  아픈 자가 이 나라의 일개 서민들이다. 
  그들은 아프지 않은 날이 없으므로 약 없이는 살 수 없다. 환절기 감기부터 근육통, 생리통부터 치통까지 약국의 약 없이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약국에서는 안 아픈 자가 지배자다. 
  그들은 약의 공급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권력을 유지한다. 한번은 약값 인상으로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언론은 약물 오남용과 금단현상으로 인한 일시적 폭동이며 공권력 강화를 연일 떠들어댔다. 금식에 들어간 고공농성자의 얼굴이 누랬다. 영양제 투입이 시급했지만, 그는 끝내 투약을 거부했다.

  강원도 태백 어디에 모여 과감히 정부가 주는 약을 끊고 자연적 치유를 도모하는 무리의 소문도 들렸다. 산야초를 뜯어 약재를 만들어 팔기도 하는데, 되레 고가라 도시민에겐 언감생심이다.

  눈 뜨면 약을 삼킨다. 눈을 위해, 간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약발로 버티는 약국의 일개 소시민으로서 삼키고 삼키고 또 삼킨다.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탈모쯤이야.

  문제는 내성이다. 몸속의 어떤 슬픔이 약에 저항하는지 다량의 복용으로 끝내 생을 놓고 가버린 사람을 생각한다. 어떤 사회학자은 그들을 약자라, 사회적 약자라 기술했으나

  무정부주의자, 난 그렇게 생각한다. 모두가 환상통에 끙끙대는 나라, 지금 약국은
  전성기다.

  ―『폭우반점』(문학의전당,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26) / 약의 나라에서 - 조우연의 ‘약국’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약국하면 ‘藥局’이나 ‘弱國’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시의 제목은 ‘藥國’, 약의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을 많이 먹는지 적게 먹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국의 수는 꽤 많은 것 같다. 좀 큰 병원 근처에는 약국이 너덧 군데는 된다. 시인이 보건대 이 땅에는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식량이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약도 무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의약분업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온 나라가 심한 몸살을 앓았었다. 가치추구가 다른 두 집단이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이 시의 반전은 제3연이다. “강원도 태백 어디에 모여 과감히 정부가 주는 약을 끊고 자연적 치유를 도모하는 무리의 소문도 들렸다.”고 하지만 그건 오히려 더 비싸다. 그저 약발로 버티는 우리 소시민, 혹은 사회적 약자에게 그 약의 내성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모두가 환상통에 끙끙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만 실제상황에 끙끙대게 하였다. 빨리 백신과 약이 나와 약국이 전성기가 되면 좋겠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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